[김상배 칼럼] `화웨이 국제정치 드라마` 시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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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배 칼럼] `화웨이 국제정치 드라마` 시청법

   
입력 2019-03-18 18:18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1년여의 기간 동안 중국의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화웨이를 둘러싼 논란이 한 편의 국제정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전에도 예고편이 없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드라마는 2018년 2월 CIA, FBI, NSA 등 미국 정보기관들이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시작되었다. 2018년 8월 미국은 '2019년 국방수권법'을 통과시키며 공공기관 등에서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의 사용을 금지했다. 2018년 12월에는 멍완저우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 부회장이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체포되며 드라마의 전개는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이러한 사태의 장르는 단순한 '기술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복잡한 '국제정치의 드라마'였다.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문제제기는 2010년대 초반의 '중국 해커 위협론'에서 2010년대 후반의 '중국 IT보안제품 위협론'으로 그 초점이 바뀌었다. 5G 네트워크 기술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화웨이의 네트워크 장비가 표적이 되었다. 화웨이 장비가 이른바 백도어를 통해서 정보를 유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연결 사회에서 이는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화웨이 백도어가 실재하는 안보위협이라는 주장과 이는 단지 미국이 '안보화'(securitization) 과정을 통해서 구성해 낸 위협일 뿐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미국이 주장하듯이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의 도입은 보안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화웨이의 행보나 투명성이 부족한 기업문화 및 성격을 보면 이러한 주장은 '합리적 의심'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보안위협의 객관적 증거를 실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공세에 대해 화웨이도 그것이 보안위협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도 못하다. 화웨이의 입장은 자사 장비의 보안문제가 발생한 적이 아직까지 없으며, 만약 문제가 발생한다면 회사 문이라도 닫겠다는 식이다. 마치 '블랙박스'를 가운데 두고 누구 말이 맞는지 믿어달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다.

2019년으로 해가 바뀌는 무렵 이러한 실랑이의 결과는 미국 쪽으로 기우는 듯이 보였다. 2018년 말 트럼프 행정부는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로 대변되는 미국의 주요 정보동맹국들에게 화웨이 보이콧에 동참할 것을 촉구, 화웨이 장비가 발붙일 곳을 아예 없애려는 듯 강경행보를 보였다.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은 2018년 말 5G 공급망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캐나다는 중국과의 갈등을 무릅쓰고 미국의 요청에 따라 멍완저우 부회장을 체포했다. 일본 역시 정부조달 입찰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2019년 2월 하순을 거치면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미국의 압박에 동참하는 듯이 보였던 서방 국가들이 전선에서 이탈하는 조짐을 보였다. 2월 17일 영국 국가사이버보안센터(NCSC)가 화웨이 장비의 보안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데 이어, 독일 역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의 요청에 따라 화웨이를 배제했던 뉴질랜드의 경우는 총리가 직접 나서 입장 변화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프랑스도 특정 기업에 대한 보이콧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들 국가가 이탈한 데에는 선두 기술기업 화웨이를 배제하고 5G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현실적 부담 외에도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미중 경쟁에서 무리하게 '내편 모으기'를 시도하는 미국에 대한 반발심이 작용했다.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드라마의 전개에 직면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더 선진화된 기술을 막기보다는 경쟁을 통해 미국이 승리하길 바란다"며 그간의 강경자세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사실상 미국의 반(反) 화웨이 전선이 와해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었다.

최근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비핵화 문제를 놓고 난항을 겪고 있는 '한반도 드라마'의 본방사수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화웨이 사태처럼 미국 정부와 중국 기업이 투톱의 주연으로 출연하는 '글로벌 드라마'의 주요 장면들도 놓치지 말고 시청할 것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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