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오하요우 재팬] 어디든 달려간다! 출장 흡연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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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의 오하요우 재팬] 어디든 달려간다! 출장 흡연버스

   
입력 2019-03-20 18:05

김인권 라이프스타일칼럼니스트


김인권 라이프스타일칼럼니스트
30년 전인 1989년 필자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도쿄의 라면집에서의 일이다. 늦은 저녁 퇴근하려고 준비 중인데 한 젊은 여성 손님이 들어오더니 점장과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같이 앉자마자 담배 한 개피를 꺼내자 점장은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여주는 것이다. 그러더니 본인도 담배를 물고 소위 '맞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둘 사이가 살짝 의심됐는데 바로 점장은 자기 딸이라며 나에게 소개를 시켜주는 바람에 궁금증은 해소됐으나 동시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만큼 일본은 불과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담배에서만큼은 OECD국가임에도 불과하고 매우 관대한 나라였으나, 2002년 도쿄 23구중의 하나인 치요다구에서 있었던 보행자흡연으로 인한 유아실명사건 이후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분리하는 '분연'(分煙)에 있어서는 매우 엄격한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사고 이후 거리 흡연 시 2만엔(약 2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조례가 제정됐으며, 2003년 5월에 간접흡연방지법이 발효된 후 공공장소를 중심으로 약 1000여개의 실외 흡연부스들이 전국 곳곳에 설치되어 아무데서나 자유롭게 담배를 피워대던 모습들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 흡연문화의 역사를 바꾸게 된 사건이 일어난 치요다구에서 최근 이색 흡연부스를 설치해 화제다. 일명 '움직이는 트레일러 흡연부스'다. 일반 트레일러 2대를 연결해 대형 재떨이 2대와 조명, 공기 청정기, 에어컨 등의 시설로 개량한 밀폐형 부스이다. 차량으로 등록돼 있어 번호판도 붙어 있고 견인차가 있으면 이동할 수도 있다. 지자체 입장에서 흡연부스를 확대하고 싶으나 주변의 반대로 설치를 못하는 경우가 빈번해 여차하면 이동할 수 있는 타입으로 궁리했다고 한다. 근처 사무실 흡연자들에게 아주 좋은 평을 얻고 있어서 앞으로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 도쿄의 흡연실 알림판

사진 = 로이터연합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출장을 다니는 흡연버스도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시즈오카현 중고차 매입 사업자 빅웨이브 홀딩스가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 '분연매너버스'가 그것이다. 좌석을 철거한 마이크로버스에 재떨이 13개를 설치하고 연기 정화 시스템을 통해 깨끗한 공기를 배출하는 '출장 흡연부스'이다. 특히 버스 자체에 축전 기능과 태양광 패널이 있어 버스를 움직일 때 이외에는 엔진을 걸 필요 없는 친환경형 시스템이다. 주로 이벤트나 공연 등 큰 행사에 활용된다. 최저 대여시간이 6시간이고 1시간에 1만엔이다. 몽골텐트 같은 곳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예전의 행사장 흡연구역과 비교하면 급 발전된 모습인 것이다

특히 8개 기업들이 참여해 물을 사용하지 않고,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도 소화가 가능한 특수 재떨이를 개발한 결과 분연은 물론 환경에 대한 배려를 인정받아, 자치체나 기업의 이벤트로부터의 출장 의뢰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휴대전화 5000대 분량의 충전이 가능한 배터리 용량과 물 끓이는 포트 연결기능도 탑재돼 있어 재해 발생시 '분연매너버스'가 아닌 '비상 전원차'로서 어디든 달려 갈 준비가 돼 있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본에서 다양한 분연문화 확산을 통한 금연정책을 펼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분연보다는 못 피우게 하는 금연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서울 시내 금연구역 면적은 공공지역을 기준으로 약 3분의 1을 넘겼지만 공공 흡연구역은 약 50개소에 불과하다고 한다. 양 국가 공히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흡연율을 줄이는 목표는 똑같겠지만, 과연 어느 정책이 목표에 먼저 다다를 것인가 매우 궁금하다. 치기 어린 시절 담배 피우다 걸린 후 용돈을 주실 때마다 "담뱃값이다"라며 말씀하신 부모님 덕분(?)에 담배에 더 이상 호기심을 안 갖고 끊어버린 옛 경험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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