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칼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문제는 국민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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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칼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문제는 국민신뢰다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19-03-31 18:17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권역별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놓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의 눈에는 이 논란이 한가해 보인다. 의원들을 불신하고 있는 국민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는 정치인들의 오만함도 보인다. 국민은 국회의원들에게 떡 줄 생각을 하지도 않고 있는데, 의원들끼리 모여 서로 인절미를 먹겠다, 시루떡을 먹겠다,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인가? 국민이 떡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특권을 완전히 내려놓고 그야말로 '공복'(公僕)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치권이 먼저 할 일이다. 그간 정치권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선거제도 개편안을 논의해왔다. 처음에는 의원 수를 늘리자는 주장까지 나왔다가 비판을 받자, 최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천재라야 이해할 수 있는' 매우 복잡한 의석배분 방식. 이 계산식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정개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의석 배분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 발언 때문이었다. ("산식을 보여달라.") "산식은 여러분들이 이해 못한다. 산식은 수학자가 손을 봐야하기 때문에." ("기자들이 이해를 못하면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아니, 국민들은 산식이 필요 없다. 예를 들어서 컴퓨터를 칠 때 컴퓨터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에 컴퓨터 부품이 어떻게 되고 이런 것은 알 필요가 없지 않으냐."
심 의원은 국민을 무시하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국민은 충분히 그리 생각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단순한 편의용 기기인 컴퓨터와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위한 선거를 동등하게 비교한 것도 적절치 않았다. 기자들도 국민들도 이해 못할 정도로 복잡한, 그래서 알 필요가 없는 계산식을 만들어 놓고, 그냥 우리를 믿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민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그냥 따라줄 마음이 생길만큼, 언제 한 번 정치권이 행동한 적이 있었던가.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겠다는 내용도 문제가 있다.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비례대표제의 취지야 좋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가. 국민은 "지역구 후보는 밉건 곱건 내가 투표를 하긴 하지만, 비례대표는 당 지도부 마음대로 자기들끼리 정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300명이라는 의원 숫자도 생각해볼 일이다. 대다수 국민은 일도 안 하면서 세금만 낭비하는 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도 상원의원 100명, 하원의원 435명, 총 533명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의원 1명이 대표하는 인구수가 우리보다 작은 나라들도 있지만, 정치를 불신하는 우리 국민의 눈에는 미국의 의사당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게 현실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의원 정수 10% 감축을 들고 나왔다. 단순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산시키기 위한 즉흥적인 의도에서 나온 제안인지, 아니면 국민의 정치 불신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방향은 그게 맞다. '반성하는 모습'이 먼저다.

훗날 언젠가, 의원들이 말 그대로 '공복'으로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때는 국민이 먼저 의원 숫자를 증원하라고 이야기 할 것이고, 난수표 비례대표제를 해보겠다고 해도 "우리 의원들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며 믿어줄 것이다. 그런 날이 올까. 앞에 자료 놓을 책상도 없이 다닥다닥 놓은 의자에 비좁게 붙어 앉아 총리를 앞에 놓고 열띠게 토론하는 영국 의회의 모습, 의사당 부근 원룸에서 숙식하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북유럽 의회의 모습...

미국의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 유세에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고 말했다. 한국의 국민은 지금 선거제도를 논의하는 정치권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문제는 신뢰야, 바보야!" 어느 정치인이, 어느 당이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특권 폐지를 위한 '행동'에 나설까. 그 '반성 이니셔티브'를 쥐는 정치인과 정당에게 국민들의 마음과 표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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