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승제 정경부 금융팀장
![[DT현장] 官출신 협회장에 목매는 이유](http://contents.dt.co.kr/images/201904/2019040402102269029001[1].jpg?var=0956 "[DT현장] 官출신 협회장에 목매는 이유")
차기 여신금융협회장에 어떤 인사가 오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모 카드업계 관계자가 건넨 말이다. 능력보다는 출신성분에 의미를 둔 솔직한 속내였다. 카드업계가 차기 여신금융협회장에 관심을 둔 이유는 김덕수 회장의 임기만료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와서다. 김 회장의 임기는 오는 6월 15일까지다. 예정대로라면 여신금융협회 이사회는 이달 말이나 내달 중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해 후보자 공모, 후보 적격성 심사, 이사회 투표 등을 거쳐 6월 초 차기 회장을 선출하게 된다.
통상적이라면 업계에선 관료 출신보다는 민간 기업 출신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업계에서 되레 손사래를 쳤다. 속사정을 들어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간 카드사들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맹점 수수료 및 법정 최고금리 인하, 카드론 등 신용카드 대출 규제 강화, 마케팅 비용 축소 등 잇따른 '규제 세트'로 지난한 과정을 겪는 중이다. 최근엔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논란도 불거졌다. 여론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기한이 연장됐지만 카드사들의 속내는 복잡하기만 하다.
수익성 하락은 곧 선후배 등 동료와의 이별을 고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요 대형 카드사들은 작년부터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그 작업은 올해도 진행 중이다. 일부 은행계 카드사는 다시 은행과 통폐합하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2002년 카드대란 이후 넘쳐나는 부실채권을 막지 못해 일부 카드사가 경쟁카드사에 매각됐고 은행계 카드사는 은행으로 통폐합됐다.
업계는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협회가 제대로 업계 입장을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민간 출신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김덕수 회장은 KB국민은행 출신으로 KB국민카드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여신금융협회장에 오른 민간기업 출신 인사다.
저축은행업계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 1월 27일 저축은행중앙회장에 관료 출신인 박재식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이 선임됐다. 박 회장은 26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기획재정부 국고국장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회장 취임 이후 예금보험료 인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현재 저축은행 예보료율은 0.40%로 은행(0.08%), 보험·증권(0.15%) 등 다른 업권에 비해 높게 책정돼 있다. 이는 2011년 부실저축은행 사태가 촉발되면서 책정된 비율이다.
저축은행 업계는 '제2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예보료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예금보험공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직전 중앙회장은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한 민간출신의 이순우 회장이었다. 그런데 박 회장이 선출되고 예보료율 인하 목소리를 내자 금융당국과 예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물론 실제로 저축은행 예보료율이 인하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중앙회가 목소리를 내주는 것만으로 저축은행 업계에선 상당한 위안을 받고 있다고 한다. 카드업계가 저축은행업계를 부러워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이쯤 되면 단체장들은 개인 능력보다 출신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김덕수 회장과 이순우 전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를 쓴 인물들이다. 김 회장은 KB국민은행 출신으로 KB국민카드 부사장과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특히 민간기업 출신으론 처음으로 여신금융협회장에 올랐다. 이순우 전 회장 역시 우리은행 행원에서 시작해 우리은행장, 우리금융지주 회장까지 역임한 인사다. 업적만 보더라도 누구보다 금융 이해도가 높고 평생 한 분야에 업을 둔 만큼 애정도 남다르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 그들보다 관료 출신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은 금융당국의 '차별적 대우'가 낳은 결과물일 것이다.
최근 정부가 '금융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감독당국이 틈만 나면 강조해온 과감한 관행 개혁 이전에 관료 출신이라고 편을 들어주고 민간출신이라고 다르게 대접하는 차별적 인식을 먼저 개혁할 필요가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말이다.
성승제 정경부 금융팀장 ba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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