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04/2019041002102269660002[1].jpg?var=4548 "[논설실의 서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존 캐리루 지음 / 박아린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건강검진은 고역이다. 팔뚝에서 피가 뽑히는 것을 보면 아프기도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내시경 검사는 더 힘들다. 그런데 이런 검사를 하지 않고도 손가락 끝을 살짝 찔러 몇 방울 혈액만으로 모든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실제로 10여 년 전 미국에서 혈액 몇 방울로 200여 가지 검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한 젊은 여성 벤처기업가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엘리자베스 홈즈.
홈즈의 회사 테라노스는 금세 거액을 투자받고 한 때 기업가치가 10조원에 달하기도 했다. 회사는 실제로 월그린과 세이프웨이라는 의약품 유통사들과 협약을 맺고 진단 서비스를 실시하려 했다. 그러나 테라노스의 검사기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검사 결과의 진의에 대한 의심은 이미 어마어마한 자금동원력을 가진 홈즈가 미국 최고의 로펌을 시켜 무마했다. 홈즈는 '제2의 스티브 잡스'로 떠올랐고 2014년 '포브스 400'의 표지를 장식했다. 타임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테라노스의 기술은 사기였다. 테라노스의 기술에 의문을 품은 월스트리트저널의 탐사전문기자 캐리루는 테라노스 내부 기밀을 알고 있던 퇴사자 60명을 포함해 160명의 내부 고발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테라노스 진단 기술은 심각한 결함이 있고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캐리루는 홈즈가 한 인터뷰 기사에서 기술을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것을 보고 본격 취재에 나섰다고 한다.
홈즈의 사례는 다시 한 번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수백 가지 건강정보를 피 한방울로 다 알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섭리에 어긋난다. 많은 정보를 알려면 고역스러운 검진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릴러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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