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승자의 덫`에 빠진 박삼구 회장

심화영기자 ┗ 채권단, 아시아나 회생 1조 지원 가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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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승자의 덫`에 빠진 박삼구 회장

심화영 기자   dorothy@
입력 2019-04-15 18:15

심화영 정경부 정책금융팀장


심화영 정경부 정책금융팀장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즉시 팔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채권단의 자금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매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번 박삼구 전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단'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첫 자구안을 채권단에게 퇴짜 맞은 후 금호그룹의 시계는 빠르게 움직였다. 금호그룹은 첫 자구안에서 '그룹 지주사인 금호고속의 오너일가 지분 전량(4.8%)을 내놓겠다'는 대가로 채권단에 5000억원의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3년 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아시아나항공을 그 때 매각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조건도 걸었다. 하지만 급변하는 항공산업에 3년의 시간을 더 줄 채권단은 없었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함께 풀 서비스가 제공되는 전통항공사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나라 국적항공사만 11개인 무한경쟁 시대다.
금호산업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채권단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매각하기로 한다는 수정 자구안을 의결했다. 이날 박 전 회장과 그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의 면담을 통해 매각을 즉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렇게 되면 그룹 핵심자산인 아시아나항공을 팔아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등을 살리고,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아시아나항공은 떨어져 나가게 된다. 아시아나항공 지분 자체를 매각하게 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자회사도 통매각으로 선회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보유 지분율 44.2%), 아시아나IDT(76.2%), 아시아나에어포트(100%), 아시아나세이버(80%), 아시아나개발(100%), 에어서울(100%) 등을 계열사로 갖고 있다. 박 전 회장은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3세 경영 제외까지도 담은 것이다. 이는 계속 불리해지는 여론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법과 원칙대로 해달라는 국민 비판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것을 고려한 조치다. 3년 후에 경영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에 협조하겠다는 과욕을 버렸다.

지난달 22일 국내 굴지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재계에 파문을 던지며 협상은 진척됐다. 국내 대표 항공사가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감사의견인 '한정'을 받으면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 것이다. 사실 아시아나항공이 빚 돌려막기에 나선 지는 십 수년째다. 올해 아시아나항공이 갚아야 할 채무는 약 1조3000억원에 이른다.


협상의 원칙 중에 '배트나'가 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을 말한다. 자구계획안은 한쪽이 철저히 약자인 협상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들어간 협상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보유하느냐' 아니면 '아시아나항공 없는 금호그룹을 살리느냐'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 됐다.

박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은 상징적인 회사다. 아시아나항공은 박 회장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계열사 지원에 앞장서온 회사다. 그런데 이런 회사가 왜 이 지경까지 됐을까.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답이 나온다. 2002년 박삼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수장으로 취임한다. 이후 국내 10대 그룹에 안착하기 위한 금호그룹의 공격적인 M&A가 시작된다.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사들인다. 그리고는 체한다. 과도한 차입금은 부메랑이 돼 인수한 업체를 토하게 했고 그룹을 뿌리째 흔들게 만들었다. 2015년 박 회장은 우여곡절 끝에 그룹 지주사인 금호산업을 되찾았지만, 올들어 4월 다시 금호고속을 담보로 5000억원을 빌리려다 채권단에게 거절당했다. 지금 아시아나항공 매각 압박을 받은 이유다.

그룹 재건을 꿈꿨던 박삼구 회장, 결국 몸통까지 내주게 됐다. '승자의 저주'라는 덫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박 회장의 경영 실책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금호그룹이 초라한 중견그룹으로 주저앉지 않으려면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뼈를 깎는 자구 및 경영혁신 노력에 나서야 한다. 오너이자 최고경영자의 오판과 무능이 직결된 폐해를 국민이 세금으로 떠안을 순 없음은 분명하다.

심화영 정경부 정책금융팀장 dorot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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