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후진 액셀 밟는 한국](http://contents.dt.co.kr/images/201904/2019041802102269781001[1].jpg?var=1741 "[DT현장] 후진 액셀 밟는 한국")
새삼스럽지만 당연한 얘기다. 마치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시대에 쓰인 점토판에도 '요즘 젊은이는 버릇이 없다'는 문장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영자들은 이 뻔한 얘기를 계속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뀌지 않아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왔지만, 우리 산업 구조는 여전히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 바뀐 게 별로 없다. 통계청과 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1995년과 2016년의 우리 제조업종 별 생산액 상위권을 보면, 여전히 자동차가 1위였고 석유화학, 음식료, 석유정제, 철강, 반도체 등도 변함이 없었다.
20년 전 주력 제조업이었지만 빠진 산업은 가전과 섬유, 일반목적기계 등 단 3개였다. 가전의 경우 원가 경쟁력 등의 이유로 국내 기업의 생산기지가 대부분 중국 등 해외로 넘어갔고, 섬유와 일반기계는 후발주자와의 가격 경쟁에서 사실상 밀려난 것이다. 이는 경제 성장과 소득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나머지 7개 업종도 밀려난 세개 업종과 딱히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부동의 생산액 1위인 자동차의 국내 생산은 2015년 456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전환했다. 치솟은 인건비와 노조의 잦은 파업으로 원가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서다.
그 결과 세계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9.8%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 2017년에는 8.3%까지 급락했다. 거의 10년 전 수준으로 후진한 것이다.이처럼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반도체와 승용차 등 10대 품목의 수출 집중도는 무려 46.6%에 이른다. 10년 전(52.6%)보다 나아졌다지만, 아직 너무 편중돼 있다.
반대로 우리와 산업 구조가 그나마 비슷한 일본의 경우 10대 품목 수출비중이 33.8%에 불과하고, 세계 시장에서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중국도 단 27.9%다. 독일과 미국도 비슷한 수준이다. 그만큼 산업의 다양성이 높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산업 구조는 여전히 경직돼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차세대 신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화장품과 의약품의 수출 실적은 과거 5년 전과 비교해 3배, 2배로 각각 성장했지만,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86%, 0.55%에 불과하다. 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가 꼭 키워야 하는 고부가가치 콘텐츠 산업 역시 아직 미진하다. 그나마 잘 나가는 게임산업의 경우에도 세계 10위권에 한국 기업의 이름은 없다.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주목받고 있는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 원격의료, 블록체인 등 신시장에서 역시 한국 기업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그 이유는 "변해야 산다"만큼이나 당연하게도 '규제'와 '이해관계' 때문이다.
산업연구원(KIET)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부가가치율은 2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인 30%에 못 미친다면서, "특정 산업에 대한 수출 집중도를 낮추고 주요 장비의 해외 의존을 극복해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기 저성장 시대에 돌입하면서 정계와 재계는 서로 폭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한쪽은 자기들 배만 불린다며 '곳간'을 풀 것을 압박하고, 다른 한쪽은 묶인 발목을 풀어달라며 '규제완화'를 외치고 있다.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투자가 이뤄져 모두가 행복하다면 규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일이고, 반대로 규제가 없으면 기업들은 돈을 벌기 위해 주머니를 열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 국가인 만큼 경제는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대신 부정한 행위만 막으면 된다. 이 원칙만 확실하다면 경제는 역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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