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노트르담 화재, 변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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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노트르담 화재, 변명은 없다

김광태 기자   ktkim@
입력 2019-04-22 18:04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첨탑을 집어 삼킬 때, 그들은 울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건 대성당을 온전히 보호해달라는 간절한 기도 뿐. 두 손을 모은 여인과 안타까움에 연신 눈시울을 훔치는 사람들의 모습. 평온한 아침, 느닷없는 몇 장의 외신사진 앞에 말을 잃었다.


85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인류유산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려한 첨탑과 고풍스런 지붕을 빼앗겼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말처럼 그들 삶의 일부가 소실되는 아픔이었을지도 모른다. 살아왔던, 지켜왔던, 선조들의 땀방울이 맺혀 있는 '공동체'의 일부가 재로 변해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심정이란….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자존감의 죽음을 경험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하면 프랑스가 아끼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위고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애정은 아주 각별했다. 위고는 1831년 발표한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대혁명의 와중에 심하게 파손돼 헐릴 위기에 내몰린 성당의 운명을 이렇게 한탄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아직 오늘날에도 장엄하고 숭고한 건물인데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늙어가면서도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최초의 돌을 놓은 샤를마뉴와 최후의 돌을 놓은 필리프 오귀스트에 대한 경의를 저버리고 세월과 인간들이 동시에 이 존경할 만한 건축물에 가한 무수한 풍화와 훼손 앞에서 한숨을 쉬지 않고 분개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위기의 노트르담 대성당에게 위고는 '어벤져스' 같은 영웅이었다. 위고의 이런 집착과도 같은 노력 덕분에 노트르담 대성당은 약탈과 파괴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흔히 프랑스 고딕건축의 정수로 꼽힌다. 웅장한 규모에 정교한 세련미까지 갖춘 이 성당은 '돌의 거대한 교향악'이라는 찬사까지 들었다. 이곳에서 중요한 국가적 행사들도 치렀다. 1431년 영국의 왕 헨리6세는 대성당에서 프랑스왕 즉위식을 거행했다.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로 즉위식을 가진 장소도 이 곳이다.


삶의 일부가 사라지는 건 고통이다. 실수에 의한 소멸은 더욱 아프다. 아무리 후회한들 시곗바늘을 되돌릴 수는 없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에서 지난 2008년 방화로 무너진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만의 기억은 아닐 것이다. 그날 밤 국민은 토지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의 어처구니 없는 방화로 숭례문이 불타는 참혹한 모습을 TV 생중계로 목격해야 했다. 5년3개월에 걸친 복원공사 끝에 제모습을 찾았다고 하지만 이미 예전의 숭례문은 아니다. 그 날의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화재로 한순간에 소실된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적지 않다. 2018년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유물을 대거 소장한 남미의 가장 큰 자연사박물관인 브라질국립박물관이 화재로 대다수의 유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792년 개관해 완벽한 음향을 자랑했던 이탈리아의 '라 페니체 오페라 하우스'도 화재를 비켜가지 못했다. 1847년 스페인에 지어진 오페라 하우스 리세우 대극장, 11세기에 완공된 영국 런던의 윈저성도 같은 운명이었다. 전쟁으로 무차별 파괴돼 사라진 문화유산은 더 많다. 급진 무장단체인 IS는 4000년 역사의 시리아 고대신전인 팔마리 유적을 철저히 파괴해 세계적인 공분을 샀다. 시리아는 오랜 내전의 결과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유산 6곳 중 5곳이 철저히 파괴됐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가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개·보수공사 중 발생한 전기회로 과부하가 화재의 유력한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참나무로 만들어진 수천 개의 들보가 화재에 취약했다. 이 중 일부는 800년이 넘은 목재도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문화재청도 이번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와 관련, 화재에 취약한 국내 문화재 전반에 대한 긴급점검에 나섰다. 천년을 지켜온 문화재도 한순간의 방심이나 부주의로 잿더미가 될 수 있다. 문화재는 한번 소실되면 복원한다 해도 그 가치와 역사성은 회복할 수 없다. 중세 전문 역사학자인 클로드 고바르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인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은 장소지만 동시에 사랑받지 못했다"며 유지관리에 미흡했고 수세기 동안 방치됐다고 꼬집었다. 어느 나라든 문화유산은 관리와 보존이 시대적 소명이다. 역사엔 '변명'이 없다.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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