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권 칼럼] 애플과 퀄컴의 화해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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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권 칼럼] 애플과 퀄컴의 화해가 의미하는 것

   
입력 2019-04-22 18:04

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장석권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규제는 기업의 행위를 구속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기업의 모든 상거래 행위는 반드시 국가가 제정한 규제의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의 활동범위가 규제관할 범위 내에 있을 때에는 규제가 법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다. 독과점에 의한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공정거래 규제는 자국 내 소비자의 후생을 향상시키기에 늘 정당화되고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


그런데 그 범위가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규제이탈의 문제가 발생한다. 규제 정당성이 확보된 규제 관할범위가 피규제 대상인 글로벌 기업의 활동범위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시장에서 구글의 상거래행위는 미국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하에 있지만 한국 시장에서 구글의 상거래행위는 그 규제를 받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현대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행하는 판매행위에 대해서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니라 미국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든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글로벌 시장에서 자국시장 참여자를 규제하는 규제기구는 두가지 상충되는 입장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하나는 자국시장에서 활동하는 시장참여자에 대해 반독점이나 공정거래 규제를 통해 자국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시장에서 매우 큰돈을 벌어들이는 자국 사업자에게 자국 시장기반의 규제를 완화해 줌으로써 국제경쟁력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이 두가지 입장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자국 시장의 규제로 손발이 묶여 자국시장보다 몇 배 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국의 먹거리와 일자리를 한꺼번에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은 그 어떤 상품시장에 비해 글로벌화가 가장 많이 진전된 시장이다. 차라리 전세계 시장을 하나의 통합시장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 결과 이 시장에서 개별국가의 규제정책은 규제변수이기 보다는 국가차원의 전략변수에 더 가깝다.



최근 애플은 미국에서 모뎀칩에 대한 퀄컴의 로열티 산정방식이 불공정하다며 제소했던 약 30조원 규모의 특허소송을 포기했다. 대신 퀄컴과의 특허공유를 통해 그동안 중단되었던 모뎀칩의 공급선을 확보함으로써 5G 아이폰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인텔이 5G 모뎀칩 생산을 접은 지금, 전세계에서 5G 모뎀칩을 생산하는 기업은 삼성전자, 화웨이, 퀄컴밖에 없다. 그런데 삼성과 화웨이는 애플과 경쟁하는 스마트폰 제조사이기에 애플이 5G 모뎀칩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은 퀄컴밖에 없다. 애플이 5G 스마트폰시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퀄컴과의 협력은 불가피했다.
만일 이 상황에서 미국의 규제기관이 나서 퀄컴의 로열티 산정방식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댄다면 어떻게 될까. 애플은 퀄컴과 특허공유를 할 수 없을 테고, 애플은 5G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갈 위험에 처하게 된다. 자국시장에서의 편협한 규제논리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려는 자국사업자를 고사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바야흐로 규제기구가 자국기업의 해외 부가가치 생산과 자국 소비자의 소비자 후생(consumer surplus)을 놓고 저울질을 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규제를 하지 않음으로써 국내 소비자의 소비자 후생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국민의 소득증대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해외 부가가치 생산을 더 크게 늘릴 수 있다면, 규제는 회피되어야 한다. 반면 규제를 통해 늘어나는 해외시장에서의 부가가치 증가보다 국내 소비자가 희생해야 하는 소비자 후생이 훨씬 크다면 규제는 당연히 시행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글로벌 시장은 자연 상태의 정글과 흡사하다. 일원화된 지배구조와 규제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서는 그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게임만이 작동할 뿐이다. 그런 곳에서 국가 단위의 우물 안 규제가 규제로서의 실효성을 갖기는 매우 어렵다. 다국적 기업간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는 글로벌 전쟁터에서 우물 안 규제가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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