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궈타이밍 "내가 대만의 트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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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궈타이밍 "내가 대만의 트럼프다"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19-04-24 18:03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논설위원
지난 17일 오후 대만 타이페이(臺北)시의 국민당 당사. 중화국민 국기가 새겨진 야구모자를 쓴 궈타이밍(郭台銘·69) 훙하이(鴻海)정밀공업(폭스콘)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이크를 잡자 "먼저 당 창립자에게 인사를 하고싶다"며 쑨원(孫文)의 초상에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쑨원이 남겼다는 유언을 읽었다. "혁명은 아직 이룩되지 않았다. 동지여, 더 분발하라." 이어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초상에도 절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민당 경선 참여를 선언했다. 선언을 마친 후 군대식 경례를 했다.


궈 회장은 1950년 대만 북부 신베이(新北)시의 '외성인'(外省人) 집안에서 태어났다. 국공내전에서 패한 후 장제스와 함께 대만으로 들어온 군인 등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은 '외성인'으로 불린다. 그 이전에 중국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내성인'(內省人) 또는 '본성인'(本省人)이라 한다. '외성인'들은 국민당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이다. 본성인은 '대만인'이라는 의식이 강해 독립 지향적이다. '외성인 2세' 궈 회장 역시 국민당 지지파이며 친중(親中) 경향이 뚜렷하다.


'외성인'들은 장제스 체제 하에서 지배 계급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 엘리트에 국한된다. 중국 산시(山西)성 출신의 궈 회장의 부친은 하급 경찰로 일했다. 집은 가난했다. 가족들은 '바다의 여신' 마주를 모시는 사원의 방 한칸에 세들어 살었다. 궈 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선원을 양성하는 해양기술학원에 들어갔다. 졸업 후 해운 관련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 1974년 23세 때 어머니로부터 빌린 돈을 포함해 10만 대만달러(약 367만원)로 조그만 공장을 설립했다. 훙하이플라스틱이다. 회사는 플라스틱제품 제조로부터 시작해 전자기기 위탁생산 업체로 급성장했다.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는' 그의 열정과 남다른 경영 전략으로 훙하이는 종업원 약 100만명, 연매출 1680억달러(약 191조 5900억원)에 달하는 세계 유수의 대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렇게 '대기업 제국'을 만들어 낸 남자에게 더 큰 도전은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타이밍이 좋다. 최근 대만에선 청년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유권자의 가장 큰 관심사가 '경제'가 된 것이다. 곽 회장의 뛰어난 수완이 경제를 살릴 것이라 믿는 대만 유권자들이 많다. 더구나 궈 회장은 친중 인사여서 중국 본토와의 경제협력과 교류 확대가 기대된다. 궈 회장은 중국 대륙에서 여러 개의 초대형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중국 정부와 밀접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주석과는 오랜 인연을 맺어온 사이다. 80년대 후반 시 주석의 푸젠(福建)성 시절부터 알고지냈다. 시 주석은 그를 '라오펑여우'(老朋友·오랜 친구)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대만에선 사업가 출신이 대권을 잡은 사례가 없다. 그러나 미국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궈 회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공통점이 많다. 강한 개성을 가진 독재형 비지니스맨이란 점, 자주 막말이나 4차원적 발언을 하는 점, 여성편력 등 사생활이 다소 복잡하다는 것 등이 그렇다. 트럼프가 미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의 당선을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에 비해 궈 회장은 트럼프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대만판 트럼프'가 될 수 있을까. 대만은 물론 세계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눈으로 그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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