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당신이 모르는 공원 벤치 팔걸이의 진짜 용도는?

입력 2019-04-26 10:00

#일을 하다 머리가 아프면 근처 공원을 찾는다. 코 끝을 자극하는 녹색 이파리 향기와 맴맴 매미소리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뻐근한 허리를 대고 누우려는 찰나, 벤치의 '모양'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아 팔걸이가 생겼구나' 언제 왜 생겼을까. 자리싸움 하지 말라고? 팔을 올려 편안하라고? 그저 보기 좋으라고?
사실 벤치 팔걸이는 노숙인들의 노숙 방지용이다. 벤치에서 술판을 벌이거나 잠을 자는 노숙인들을 쫓아내기 위해 고안된 '적대적 건축'이다.

'적대적 건축'이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오래 머무는 걸 방지하기 위한 도시 디자인의 한 형태다. 창틀에 뾰족한 철심을 설치하거나 벤치를 일부러 굴곡지게 만드는 등 휴식을 취하기 불편하게 고안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 약 10여 년 전부터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역과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노숙자를 쫓아내는 벤치 팔걸이, 정말 효과가 있었을까?

2017년 영국 남부 도시 본머스 시의회는 거리의 노숙인들이 벤치에 누워자는 것을 막기 위해 팔걸이를 설치했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약 2만 3000여 명이 시의회에 '팔걸이를 없애자'고 청원했다. 이들은 벤치 팔걸이가 노숙인들에게 비인간적이고 잔혹하다며 거리에 설치된 28개의 벤치를 이불과 쿠션 등으로 꾸몄다.

또 벤치에서 친구와 장기를 두고, 연인과 포옹을 하는 등 자신의 일상도 불편해졌다고 주장했다.

결국 의회는 벤치에 설치된 팔걸이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벤치에 눕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거리의 노숙인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닐 뿐더러, 개인은 편하지만 두 사람 이상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영국에선 이미 추방된 '벤치 팔걸이'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존재한다. 노숙인 추방에만 혈안돼 사람을 쫓는 벤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야박한 벤치' 이대로 두는 게 괜찮을까.

김지은기자 sooy0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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