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계층이동 사다리 걷어차인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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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계층이동 사다리 걷어차인 청년들

   
입력 2019-04-28 18:07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너 만나고 우리가게 되는 일이 많아, 너무 많아…. 우리 가게에 뼈를 묻어줘."


지난해 라디오에서 자주 들렸던 어느 아르바이트 알선업체의 광고카피다. 고용주는 아르바이트생의 일에 만족해서 '우리 가게에서 계속해서 일해달라'는 배려의 의미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이 "넌 평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라"는 뜻이라면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수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은 언젠가 상점 주인이 되거나, 다른 정규직으로 취업하길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지 못하고, 단기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는 청년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가 밝힌 3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3월보다 0.8%포인트 낮아진 10.8%였다. 청년실업률의 수치는 조금 개선되었지만 체감실업률이라고 할 수 있는 '확장실업률'은 지난해보다 1.1%포인트 오른 25.1%에 달했다. 즉, 15~29세의 청년 100명 중의 11명은 실업 상태이고, 25명은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미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꿈들도 점차 멀어져가고 있다.

흔히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룬 성취를 표현한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이러한 성취가 많은 국가 중에 하나였다. 1960년 초반 100달러도 안됐던 1인당 국민소득은 1977년 1000달러, 1995년 1만달러를 거쳐 지난해에는 3만달러를 넘어서게 되었다. 말 그대로 '다이나믹 코리아'(Dynamic Korea)의 신화이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계층을 이동하기 힘들어지면서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조국 민정수석은 "개천에서 용이 날 확률은 극히 줄어들었다"며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씁쓸하지만 그의 진단이 어쩌면 옳을 지도 모른다.




10여년전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라는 책에서 "현재 선진국들은 과거 경제발전을 도모하면서 보호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놓고, 지금에 와서는 후진국에게 자유무역을 선택하고,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한때 외국의 지적재산권을 상습적으로 침해했던 국가들이 이제는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해 처벌요구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선진국의 위선이라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책들을 펴면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립형사립고·외국어고등학교의 폐지정책이 그러하다. 사회지도층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를 졸업시킨 뒤 로스쿨과 의대에 보냈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사고와 외고에 구태여 자녀를 보낼 필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요즘 부동산시장에 '줍줍'이라는 신어가 등장했다고 한다. 서울 청량리와 홍제동에서 아파트를 분양받고도 자금 부족으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돈이 있는 사람들이 이를 '줍고 또 줍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정부가 9억원 이상의 분양아파트에 대한 중도금 대출의 규제를 하면서, 5억~6억원의 현금이 없는 서민들은 청약받은 아파트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신 이들 아파트는 현금 부자들과 그 자녀들이 줍는 대상이 되었다. 시세차익도 그들만의 몫이다.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기회는 더 멀어졌다.

요즘 청년문화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인 '소확행'이라는 말로서 대변된다. 이는 어쩌면 붕어, 개구리, 가재가 개천에서 행복하게 사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꿈이 없으므로 좌절도 없다. 그러나 그것을 진정한 행복일까? 개천에서의 삶은 언제나 노곤하다. 다른 포식자의 위협에도 늘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개천을 깨끗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정부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임무는 붕어, 개구리, 가재가 용이 되어 날 수 있도록 '승천의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평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임대주택에서 만족하면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상점 주인이 되고, 아파트주인이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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