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칼럼] 만인 對 만인 투쟁장 된 `인터넷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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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칼럼] 만인 對 만인 투쟁장 된 `인터넷 정치`

   
입력 2019-05-06 18:09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인터넷 정치의 미래에 희망을 품었었다. 지금은 걱정이 앞선다. 정치가 인터넷에 휘둘리고 있어서다. 인터넷이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공동체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정당 간 경쟁(競爭)이 정쟁(政爭)을 넘어서 전쟁(戰爭)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는 인터넷 정치, 방치할 것인가.


인터넷은 수단이다. 멋진 도구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비용을 제로 수준으로 낮춰줬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쉽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유권자와 정당, 정치인이 직접 소통한다. 획기적이고 소중한 인터넷의 순기능이다.
그러나 '그저 도구일 뿐'이다. 사용하는 인간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인터넷 정치의 이면에는 심각한 위험요소 두 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론조작과 갈등증폭, 이들이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 강한 심증만 있던 인터넷 '여론조작'은 드루킹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드루킹은 경공모 회원들과 2016년 12월~2018년 3월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이용해 2300여개의 아이디로 포털 뉴스기사 8만1000여 개에 달린 댓글 140만 여개에 공감·비공감 클릭 9970여 만회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조작 횟수가 무려 1억 회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매크로 기술은 어렵지 않고 막기가 힘들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댓글을 기계적으로 조작하는 매크로 자체를 기술적으로 원천봉쇄하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게 현실이고, 그게 문제다.

두 번째 위협요소인 인터넷의 '갈등증폭'은 이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사태에서 정점을 찍었다. 4월 22일 게시판에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 올라왔다. 일주일 뒤인 4월29일에 '더불어민주당 정당해산 청구'가 등장했다. 4월3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청원합니다'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상대방에서 정신 나간 짓 한다고 따라하면 똑같은 인간되는 겁니다." 인터넷 댓글 중에는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멈추자는 주장은 양 진영의 '공격' 구호에 묻혔다. 인터넷 공간에는 상대 정당과 국민을 같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생각이 다른 이웃'이 아닌 '없애야하는 적'으로 보는 글들이 넘쳐난다. 정치권은 공동체 통합은 안중에 없고 갈등을 어떻게 유리하게 '활용'할 것인지에 골몰한다. 그 결과 5월3일 현재 자유한국당 해산청원은 12일 만에 170만을, 더불어민주당 해산청원은 5일 만에 29만을 넘겼다. 문대통령 탄핵청원도 4일 만에 6만을 넘어섰다.


그런데 그 숫자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여당도 야당도, 청와대도, 이 세 개의 청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숫자 자체도 중복청원이나 조작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인터넷의 정치적 양극화, 분극화 유발과 그에 따른 진영 간 갈등 증폭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간이 죽음을 피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 자연 상태를 떠나 계약을 통해 시민사회를 건설했다고 말했다.

정치가 전쟁이 되는 국가에 미래는 없다. 홉스의 사회계약처럼, 인터넷 시대에도 여론조작과 갈등증폭을 방지할 수 있는 '인터넷의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규율과 자제로 정치를 전쟁터가 아닌 '룰이 지켜지는 경쟁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게 아니라면, 진보와 보수, 좌와 우 모두 '인터넷의 어두움'을 직시하고 사회계약에 합의해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첫째는 규율이다. 조작이 손쉬운 인터넷의 특성을 감안해 정치활용 방법을 엄밀히 정하고 조작 범죄에 대해서는 선거출마 봉쇄 등으로 경종을 울려야 한다. 둘째는 자제다. 예컨대 여당과 야당, 청와대는 말도 안 되는 청원이 올라오면 지금처럼 방치하지 말고 제한해야 한다.

인터넷은 '날이 잘 선 칼'이다. 이걸 서로 경쟁 정당에게, 생각이 다른 국민에게 휘두르면, 그 때부터 정치는 '전쟁'이 된다. 인터넷이라는 칼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용한 요리 도구가 될 수도,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 인터넷은 흉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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