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칼럼] `애프터 쇼크` 휩싸인 40대

예진수기자 ┗ WTO 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놓고 한일 격돌

메뉴열기 검색열기

[예진수 칼럼] `애프터 쇼크` 휩싸인 40대

예진수 기자   jinye@
입력 2019-05-07 17:57

예진수 선임기자


예진수 선임기자
한국이 1분기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역성장을 했지만, 일본은 일찌감치 지난해 1분기에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9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한국과 똑 같은 -0.3%의 성장률이다. 한국과 일본의 마이너스 성장 요인을 보면 모두 총수요 부진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경우, 0%대 저물가 행진이 겹치면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일본과 다른 점이다. 한국에서는 경제 허리를 떠받치는 중산층의 소비 둔화도 두드러진다.


저금리로 흥청망청하던 중산층은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 '애프터 쇼크(After shock·위기 이후 또다른 위기)'를 겪는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로버트 B. 라이히는 '애프터 쇼크'라는 책에서 거품 시대에 소득과 부가 늘어난 중산층이 경기가 나빠진 상황에서도 적절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빚의 수렁에 더 깊숙이 빠져들 것이라고 예견했다. 세계적인 시인 W. H 오든도 '이름 없는 시민'이라는 시에서 월부(月賦)의 중독성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는 통계국에 의해 당국에 대해 불평이 전혀 없는 시민으로 판명됐다/(중략) 그는 월부의 편리에 아주 민감했고, 현대인에게 필요한 전부를, 축음기, 라디오, 자동차, 냉장고를 갖고 있다고 우리 여론조사들은 흡족해 한다.' 이 시가 날카롭게 지적한 것처럼 중산층들도 일단 할부의 유혹에 넘어가면 빚을 내서라도 신상품을 구매하려는 관성에 휩싸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분기 한국의 '준 디플레이션 현상'을 진단하면서 40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 부진과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원리금 상환액 증가가 소비 여력을 제한한다고 봤다. 저성장기를 거쳐 혹독한 구조조정기에 청장년기를 보내는 40대의 '애프터 쇼크'는 강도가 더 세다. 얼마전 만난 40대 중반의 지인은 "직장에서 퇴직한 뒤 식료품 가게를 열었지만 최저임금 급등으로 부채를 갚기가 버겁다. 올해 초 일하던 사람을 내보냈다"며 "지금은 아르바이트생도 못 쓸 형편이라, 온 종일 아내와 둘이 가게를 보고 있다. 여가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20대 비정규직 청년을 '88만원 세대'로 개념화한 책이 있었지만, 지금의 40대를 압축하는 단어는 '250만원 세대'일 것이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안정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직장을 전전하는 40대의 임금 수준은 대체로 250만원 수준으로 파악된다"며 "자영업자도 사업장 취업자도 모두 월급이 이 수준에서 맴돈다. 4인 가구의 적정 생활비에는 턱없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월급으로 견디기 어려워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고 해도 한국 중소·중견 기업의 임금 지급 능력은 대체로 월 250만원선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달 '압박받은 중산층' 보고서에서 베이비붐 세대(1943∼1964년생)의 68.4%가 중산층이지만, 그다음 세대인 X세대(1965∼1982년생)는 63.7%, 현재 20∼30대인 밀레니엄 세대(1983∼2002년생)는 60.3%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 기구는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려면 5세대(150년)가 걸린다는 충격적인 통계도 내놨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소득 최하위 20%(1분위) 가구 월평균 명목소득(2인 이상 가구)은 17.7% 감소했고, 최상위 20%(5분위) 가구 명목소득은 10.4%가 늘었다. 두 계층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의 감소율과 증가율은 4분기 기준으로는 2003년 통계작성 이후 각각 최고치다. 문재인 정부는 10일 출범 2주년을 맞는다. '소득주도 성장'을 고수해오며, 집권 2년차를 마무리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 역성장이 나타나면서 그 많던 중산층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은 뼈아픈 지점이다.

역성장 사회에서 중산층 경제가 좋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6조7000억원에 이르는 어정쩡한 추가경정예산으로는 경기를 살리기 어렵고, 재정건전성 악화만 초래할 뿐이다. 성장률의 급격한 추락을 막기 위해서는 아마추어적 접근에서 벗어나 소비진작을 위한 과감한 감세 정책 등 정공법을 펴야 한다. 경제가 힘차게 성장해야 40대 고용률이 높아지고 중산층도 두터워진다.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는 데,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등의 미온적 조치로는 어림없다. 규제 허들을 제거하는 등 화원(火源·위기근원)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은 두말이 필요 없다.
예진수선임기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