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작은 것의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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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작은 것의 중요함

   
입력 2019-05-09 17:56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내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학교 앞에는 오래된 조그만 서점이 있다. 다른 학교 앞의 크고 작은 서점들이 문을 닫을 때도 이 서점만큼은 학교 앞을 지켜왔다. 학창시절 책을 사지 않아도 나는 이 서점에 자주 들릴 수 밖에 없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그 시절, 이 서점에 붙여놓은 전지에 적힌 메모로 우리는 약속을 하고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그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나의 학창시절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 모두를 오롯이 되살려주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했다.


얼마 전 들려 온 안타까운 소식은 그간 그 서점을 지켜온 서점의 대표가 더 이상 그 서점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적자에도 서점을 운영하느라 많은 빚을 쌓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더 이상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서점으로 향한 나는 오래된 주인장과의 과거 인연을 이야기하며, 그간의 어려움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들을 수 있었다.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다행히 젊은 친구들이 나서주어 가게의 폐업은 막게 되었으며, 이제는 제주도로 가 다시 작은 서점을 운영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을 듣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생각은 왜 이곳이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몰랐을까 하는 것이었다.
답은 사실상 빤한 것이었다. 지나다니며 늘 보는 곳이지만, 정작 나는 그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 편리함과 사무적 간편함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서점보다는 온라인 유통 방식에 익숙해져버린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책을 구매한다는 기능만을 생각한다면, 서점에서 구매이건 온라인 유통 방식이건 차이가 없으며, 편리함과 간편함에 있어 온라인 유통이 훨씬 더 큰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편에서 진한 아쉬움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느 누구에게나 감정적으로 연관된 공간들이 생길 수 있다. 이 공간들은 그저 있는 무차별적인 공간이 아닌 나만의 특화된 공간이다. 우리는 이러한 공간을 흔히 장소라 부른다. 장소는 그 곳을 특별히 경험한 이들과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소는 그저 기능적 공간이 아니다. 이 유대감은 단지 장소 자체에 대한 개인의 배타적 감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유대감은 그 장소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관계로부터도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수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기에, 이 장소는 결코 대체될 수도 거래될 수도 없다.

물론 물리적 공간이라고 해서 모두 장소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이 있고, 책에 들어있는 정보를 만나는 것에 한정된 것이라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서점들도 서로 무차별적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대형 서점들에서 느끼는 상호 익명적 만남들 속에서 장소에 대한 유대감이 형성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가 이야기 중인 서점과 내가 갖고 있는 유대감은 단지 책을 사고파는 관계 속에서가 아닌, 그 곳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구체적인 인간관계들로부터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서점과 같은 장소의 감소는 단순한 공간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 서점은 멸실(滅失)을 면했지만, 많은 장소들은 그러한 운명을 받아들였으며, 지금도 그러한 운명과 맞닥뜨리고 있다.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기능적 차원의 대형화는 이러한 장소 상실의 주된 원인이다.


대형화는 성장의 논리에 의해 지지되어 왔다. 성장을 위해 효율성이 제고되어야 했다. 투입분에 대하여 결과분의 비율이 높아지게 하기 위해, 다양성보다는 단순성이, 소형화보다는 대형화가 추진되어 왔다. 이 결과 도시는 거대하게 확장되고, 거주의 방식도 대형화되었다. 이 과정은 기능적 환원에 의해 수행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시장이라는 장소가 물건의 유통과 판매 공간으로 환원될 때, 대형마트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거주 장소로서의 집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 대형마트도 기능적으로 훨씬 우수한 온라인 유통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위험에 처해있다.

이미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획일화 비판을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 획일화를 극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성장은 지상과제가 될 수 없는 형편에 다다랐다. 각종 국제 경제지표는 과거와 같은 성장 중심의 지향이 유효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간 '지속적 가능한 성장'이 강조되어 왔지만, 사실 지속성과 성장은 양립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더욱이 이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인구성장률의 하락은 대량 생산을 소비할 능력이 유지될 수 없음도 지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하는 것도 사실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과연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아쉽게도 우리는 여전히 성장을 유일한 지향점으로 삼는데 주저함이 없는 듯하다. 물론 성장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일한 지향점일 때 우리는 성장의 한 조건일 수도 있는 잠재성을 상실시킬 수도 있다. 작고 다양한 것의 중요성을 단지 소중함이라는 감정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고려해야만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정리될 무렵, 서점 주인장과의 대화도 끝이 났다. 제주도에서 다시 시작할 작은 서점 운동을 축복하면서, 주인장이 쓴 책 세 권을, 어쩌면 마지막으로, 사가지고 나왔다. 그의 작은 제주도 서점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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