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누가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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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 칼럼] 누가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가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19-05-14 09:44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취임 3년차 첫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낡은 이념의 잣대는 그만 버렸으면 한다"고 했다.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아야 하고 이념의 잣대는 이제 버려야 한다는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에도 문 대통령 특유의 팩트를 비껴가는, 두루뭉술 번지수를 잘못 찾은 발언이다. 대통령이 구체적 사안을 지목해 언급하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옳지만, 이번 건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겠다.


문 대통령은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봤다. 과거 '북풍' 논란과 때를 맞춘 간첩사건발표가 있었다. 주로 자유민주(보수) 진영이 전가의 보도(寶刀)로 활용했다고 인민민주(진보) 진영이 비난하는 단골 소재다. 최근에는 '종북' '친북'이라며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잘못된 건가. 핵이란 치명적 살상무기를 갖고 위협하는 집단을 경계하기 위해 여론을 조성하는 행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거짓으로 여론몰이를 했다면 그건 진실의 문제이지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니 따질 계제도 아니다.

사실,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지금 '분단'으로부터 가장 많은 정치적 이득을 얻고 있는 정치세력은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이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의 상당 부분은 대북관계 지지도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최근 문 대통령 취임 2주년 국정지지도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도 중 '북한과의 관계 개선'(16%), '외교를 잘함'(14%), '평화를 위한 노력'(6%) 등 36%가 대북관련 정책에 기반하고 있다. 반면, 부정적 평가자의 13%만이 친북성향을 부정평가 이유로 들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도의 절대 비중이 대북정책에서 나오고 있고 지지도가 꾸준히 40% 중반 대를 유지하는 배경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맹목적 평화주의자 또는 '웰빙주의자'들의 묻지마식 탄탄한 지지가 있기 때문에 문 정권은 대북 경협에 올인하고 미사일 발사한 지 나흘도 안 돼 식량지원 의사를 밝힐 정도로 대범해질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자유민주진영이 분단을 '경계' 또는 '선용' 했다면 인민민주진영은 분단을 '이용' 또는 '악용' 한 것으로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이제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면서 낡은 이념이니 버리자고 한 말이 결국 누구한테 돌아가야 하는지 드러났다. 분단을 정치에 '악용하는' 것은 낡은 이념일 수 있지만, 분단을 정치에서 '경계하는' 것은 결코 낡은 이념이 아니다. 이념은 '국가나 사회가 이상으로 여기는 생각이나 견해'다. 함부로 낡은 것이라 폄훼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지금 이 나라의 위기는 이념의 혼돈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정부의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교육, 국방 등 대부분의 정책들이 건국 때 약속하고 지금까지 축적해온 '자유민주 시장경제' 이념을 훼절하면서 생긴 것들이다. 그 이념은 헌법에 분명히 씌어있다.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헌법을 부정하는 일이다. 지금 국민들은 이념의 혼미 속에 살고 있다. 자기 목숨을 구해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결사반대하는 것과 같은 황당한 일들이 비일비재 일어난다. 현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하는 이스칸데르형 미사일 발사를 보고도 국민들은 태평하다.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블루칼라(41%)보다 화이트칼라(59%)에서 훨씬 높고, 경제적 하층(30%) 보다 상층(62%)에서는 두 배 높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 풍조를 엿볼 수 있다. 미디어를 장악하고 '평화 프레임'으로 분단을 이용하는 집권세력의 선전에 넘어간 결과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이지고잉'이 바뀌지 않는 한 희망이 없다. 국가도 자살을 한다. 영혼이 망가진 국민은 국가를 가질 자격이 없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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