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도 넘었다" 입장 번복
공화당 내부·지지층 결집 시도
민주당 총공세… "역풍 맞을것"
미국에서 낙태 찬반논쟁이 대선 이슈로 급부상했다. 앨라배마주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성폭행 피해로 인한 낙태까지 금지하는 초강력 법에 서명하자 이를 둘러싼 여야 대선주자 간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논쟁의 중심이 된 '앨라배마주 낙태금지법'은 임신 중인 여성의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을 때를 빼고는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성폭행 피해로 임신하게 된 경우나 근친상간으로 아이를 갖게 된 경우 등에 대한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낙태 시술을 한 의사는 최고 99년형에 처하도록 했다. 사실상 앨라배마주에서는 낙태가 원천 봉쇄된 셈이다.
공화당이 다수인 미주리주 상원은 지난 16일 임신 8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이날 법안 가결은 앨라배마주가 초강력 낙태금지법을 마련한지 불과 하루 만의 일이었다. 이에 앞서 조지아, 켄터키, 미시시피 주 등도 태아의 심장 박동이 인지되는 통상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얼굴)도 낙태 논쟁에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트위터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말하자면 나는 낙태를 강력하게 반대한다"면서도 "성폭행과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때 등 세 가지 경우에는 예외다"라고 트위터에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낙태의 '3대 예외 조건'을 제시, 다소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여성 표심을 의식한 듯 외연 확대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특히 이날 "우리는 함께 뭉쳐서 2020년 생명을 위해 이겨야 한다"면서 "우리가 어리석게 행동하거나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힘겹게 싸워 얻어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며 공화당 내부의 균열을 경계하는 동시에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9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두고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하는 앨라배마주 법은 '도를 넘었다'(go too far)는 입장을 시사했다"고 설명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3가지 예외 조건에 대해선 낙태에 대한 권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며 "이는 그의 중요한 지지기반인 많은 낙태 반대 보수층에서도 수용 가능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앨라배마주의 낙태법이 도를 넘었다는 걸 내비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통상 낙태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로 여겨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 진영 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임신 24주 이후의 '후기 낙태'를 허용한 뉴욕주 법을 놓고 거센 공격을 가해온 공화당 진영 내부에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앨라배마주 법이 자칫 반대 진영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나아가 공화당의 텃밭이자 보수성향인 다수의 남부 주(州)들이 연방대법원 판례를 뒤집겠다는 의도로 낙태금지법을 내놓고 있어 정치적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대선을 앞두고 전국적 차원의 낙태 찬반논쟁이 가열되면서 격한 법정 공방도 예고되고 있다. 앨라배마주에 이어 미주리주 주의회 하원에서 지난 17일 임신 8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등 미국 내에서 낙태금지를 입법화하는 주(州)가 늘어나는 가운데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1973년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인정한 연방대법원의 '로 대(對)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힐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내비치고 있다.
공화당 대선주자 경선에 나섰던 밋 롬니 상원의원은 CNN의 스테이트오브유니언에 출연해 "나는 앨라배마 법을 지지하지 않는다. 성폭행, 근친상간, 산모생명이 위험한 경우의 낙태금지 예외에 찬성한다"고 말해 공화당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반면 민주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특히 키어스틴 질리브랜드(뉴욕) 상원의원은 이날 미 CBS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이 갖고 있는 '임신·출산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시작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은 "여성 투표자의 급증 추세가 내년 대선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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