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국가 지탱하는 주축… 자유와 정직이 국가번영 이끌어"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이규화기자 ┗ 與, 한국당 `경제청문회` 주장 못받을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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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국가 지탱하는 주축… 자유와 정직이 국가번영 이끌어"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19-05-23 17:58

기업인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 미치면 우리 세상도 새롭게 바꿀 수 있어
직원에 말로만 주인의식 소용없어, 성과공유제로 진짜 주인을 만들어야
임기때 꽃 피우고 성과 얻으려는 것 문제… 후배들이 열매 따게 해줘야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KSS해운 고문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박종규 바른경제동인회 회장·KSS해운 고문




오너경영과 전문경영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계적 우량 기업들 가운데는 성공적인 오너경영(대주주 경영체제)을 하는 곳이 적지 않다. 반면, 오너경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부조리가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일어난다. 대부분의 영미 경영학 원론서는 전문경영인체제를 손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제도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영원한 평행선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도야 어떻든 결국 운용의 주체는 사람이다. 사람만 똑바로 돼있다면 이런 논쟁은 헛된 일일 것이다. 바로 투명경영이다.

오너경영이 압도적인 한국적 상황에서 투명경영을 통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경영인체제를 성공적으로 운용하는 기업이 있다. KSS해운이 바로 주인공으로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이 회사는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해 직원이 곧 주주다. 그래서 배당도 받는다. 별도로 이익의 10%를 직원들에게 공유하는 이익공유제(성과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회사가 유한양행을 비롯해 DY(동양기전) 등 극소수에 그친다. 이 예외적인 결과를 만든 이가 바로 KSS해운의 설립자이자 대주주요 현재는 고문으로 은퇴한 박종규 회장이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기업인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큰 기업도 많아져야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존경받는 기업도 많이 늘어야 해요. 그러려면 회사 구성원이 주주가 되고 이익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면 투명경영이 안 될 수가 없어요. 대주주로서 권한을 내려놓았습니다. 우리 회사는 창립 때부터 리베이트 없는 영업, 투명한 회계처리, 성과공유제, 종업원지주제를 채택했습니다. 난관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오늘까지 오게 됐어요. 기업은 국가를 지탱하는 중추입니다. 그 기업과 기업 구성원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직이 사회의 기둥이 될 때 국가경제가 성장하는 겁니다. 결국 자유와 정직이 번영을 가져옵니다."

기업 경영이 어느 때보다도 위협받고 있는 때에 '원칙과 투명성'으로 우량기업(KSS해운은 부침이 있었지만 지난 50년 동안 연 평균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2018년 회계연도에는 23%가 넘었다)을 만들어온 박 회장의 철학은 울림이 크다. 뒷돈도 로비도 없이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어려웠던 시절을 헤쳐온 박 회장의 역정을 듣고 싶었다. 서울 인사동 초입의 회사는 생각했던 대로 조촐하고 정결했다. 인터뷰한 조그만 방은 원래 고문실이었는데, 박 고문이 회사에 거의 나오지 않는 관계로 직원 휴게실이나 회의실로 쓴다고 했다. 물론 그럴싸한 책상도 화려한 회전의자도 안 보였다. 박 회장이 "내가 저 뒤로 보이는 배 모형은 치우지 말라고 부탁했어요"라며 가리키는 배만이 여기가 아시아 굴지의 석유화학 및 가스운송업 회사의 창업자 방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박 회장이 이달 초 펴낸 그의 경영철학서이자 KSS해운 사사(社史)라 할 수 있는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읽은 얘기부터 꺼냈다.



-최근 펴내신 책을 보면 첫 배를 도입할 때 일본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배 도입 파이낸스가 잘 되지 않자 박 회장은 일본에서 '자손'(自損)을 포함한 모든 상황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는 생명보험에 들었다. 만약의 경우 자신이 없더라도 배 값을 지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1970년 일본에서 첫 배를 구입하는데 배를 계약하고 인수하는데 일본의 해운업계의 제도나 관습에서 제약이 많았어요. 맨손으로 들어올 수 없었지. 배를 끌고 와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8개월을 일본에 머무르며 자금을 동원하고 업계를 설득했어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생명보다 배를 한국에 가져와야 한다는 욕심이 더 컸어요."

-목숨을 걸고 들여온 배로 사업을 시작했으니 그 각오가 오늘날 KSS해운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만연했던 리베이트를 처음부터 단절하고 원칙에 입각한 경영을 한다는 것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인데요.

"그런 환경 속에서 기업을 끌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개인적 고생이 심했어요. 가족도 그렇고. 나는 월급 외에 집에 갔다준 게 없어요. 회사 설립 초기에는 월급도 많지 않았고. 사장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돼요, 한국 같은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한 목표, 기업 투명성 문제를 계속 추구해온 결과지요. 마음속으로 좌절할 때도 많았어요. 어느 때는 나도 질려서 '이거 꼭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했어요. 남들 다 안 하는데. 은행에서 자금을 빌리는데도, 좀 집어주면 쉽게 되는데, 그걸 안 하려고 하니까 어려웠지요. 다른 사람은 한 번 가서 해결할 것을 나는 네 번 다섯 번 열 번까지 가야했으니까. 매일 와서 돈 달라고 했으니…. 그렇게라도 했으니까 지켜진 거예요."


-어지간한 사람은 그렇게 하다가 중간에 그만둘 텐데요.

"한 번만 잘못하면, 원칙을 어겨버리면 싹 무너져버려요. 참 어렵지요. 이게 참 중요해요. 열 번 잘 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면, '아이쿠 마 비자금 좀 만들어 쓰자'하면 끝나는 거예요. 대표가 그러면 종업원이 안단 말이에요. 그러면 무너지지. 그러니까 철저하게 지키는 방향으로 했어요. 우리 중역들도 고생 참 많이 했어요."

-약관의 나이에 창업(1969년 12월 31일)을 하셨는데, 창업 초기 직원들이 특히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창업 초기 멤버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은퇴하고 3, 4세대가 주축이에요. 지금 사장이 4번째 전문경영인입니다. 바로 옆방(왼쪽)의 이대성 사장인데, 내가 사장할 때 이 사람이 대리였어요. 저는 잘 몰랐어요.(크게 웃음)"

-대표이사 선임에 관여를 안 하셨나요.

"이 옆방(오른쪽)이 회장실인데, 11년 만에 사장을 그만뒀어요. 후임자를 지정해주십시오 그래요. 할 만한 사람이 누구 있냐 물었어요. 두 사람을 천거를 해요. 그런데 둘 다 모르겠어요. 어떤 사람인지 실력이 어떤지 모르겠어요. 내가 은퇴한 후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없으니. 한 사람은 서울대 농과대 나온 사람이래요. 나는 서울대 정치학과 나왔으니 동문 후배고, 다른 한 사람은 잘 모르겠고. 이런 경우 잘 모르니까 동문 후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가만히 보니 이거 안 되겠어요. 잘못 판단할 수 있겠다 싶어 사장 지명 권한을 스스로 없애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외이사 중심의 사장추천위원회 제도를 만들고 여기서 선거를 통해 뽑도록 했지요."

-KSS해운 대표이사는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하고 투표를 통해 선출합니까.

"우선 추천위원회를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하잖아요. 내가 추천하는 사람 한 사람, 사주조합에서 추천하는 사람 한 사람, 그만 두는 사장 이렇게 사내에서 구성하고 사외이사들로 구성합니다. 그런데 사주조합에서는 사회 명망 있는 사람을 추천하는 경우가 있어요. 누가 올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우리 기업의 임원 했던 사람 중에서 하자 그랬어요. 그래야 회사 내력도 알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내가 추천위원회에 누굴 해주라는 둥 절대 누구를 언급 안 해요. 그걸 하게 되면 내 입김으로 다 되니까요.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나는 잘 모르겠다, 알아서 하라 했지요. 지금도 그래요. 내가 그러니 사주조합에서도 나를 따라 어떤 언급도 안 해요. 대표이사 선임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지요. 추천위원이 최선을 다해 대표이사를 결정하는 겁니다."

-보통 오너기업은 오너 말 한 마디로 결정되는데요, KSS해운의 사장 선임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있지요. 우선 오너의 마음이 아니라 종업원들의 뜻에 의해 선임된다는 거고, 많은 절차를 통해 필터링을 거치는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선임된다는 겁니다. 당연히 회사 단합이 잘 될 수밖에."

-그래서 그런지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23%가 넘었어요.

"순이익도 10% 이상입니다. 지금 사장이 한 번 연임해서 임기 5년째인데 매출액을 배로 늘렸어요. 이익공유제가 있으니 그 중 11%는 직원들한테 돌아갑니다. 모두 동등한 프로테지로 줬습니다. 계산해보니 자기 월급의 485%인가 그래요. 원래 600% 상여금이 있었는데, 이익공유제를 도입하면서 그 중 400%는 월급으로 편입했어요. 나머지 200%가 상여금으로 남았는데, 이걸 없애고 이익공유제로 전환한 겁니다. 이익을 많이 내면 200%보다 훨씬 많이 받고 이익이 없으면 전혀 못 받을 수도 있는 거지요. "

-KSS해운이 주목을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이익공유제를 운영하는 겁니다. 한국 기업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제도인데요.

"이익공유제는 종업원지주제와 함께 주인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말로만 주인의식을 가져라 해선 안 돼요. 그래서 이익의 10%를 무조건 동등한 비율로 공유합니다. 사회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이거야말로 자본주의적 방식이지요.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어요. 왜냐하면 보너스가 600%가 있어서 두 달에 한 번씩 월급처럼 보너스가 나오는데, 이익공유제니까 일 년간 기다려야 되잖아요. 결산을 한 후 주거든요. 직원들이 처음에 조금 적응하는데 어려웠지만, 월급은 생활을 하고 이익금은 저축을 하는 등 재산증식에 쓰더라고요. 주식을 산다든지, 집을 산다든지 그런 데 쓰더라고요."

-KSS해운 사주조합을 일찍이 도입하고 이익공유제를 운영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경영학자들이 KSS해운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GE 잭 웰치라든가 JAL(일본 항공사)을 회생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 등 스타급 경영자들이 있잖아요. 카리스마가 있어요. 따라와라 이러지요. 그런 사람은 참 훌륭해요, 그런데 나는 집단주의야. 한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집단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같이 하는 것이 낫다고 봐요. 잭 웰치 같은 사람은 자기는 유명하게 되지만, 직원들은 아주 혹독하게 부려지거든요.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오래 못 간다 생각해요. 내가 죽고 난 뒤에 회사가 어떻게 될 거냐를 항상 생각했어요. 사장 지명이 한 번은 잘 된다 해도 다음에도 또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다음에는 더 몰라요, 그럼 내가 죽고 나면 누가 할 거냐 하는 데서 출발했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시스템에 의해서 해나가야지 생각했어요."

-회장님은 이익과 권한을 내려놓는 것을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크게 웃음)내가 권한을 내려놓아야 내가 없어도 오토매틱으로 회사가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업에 자동화를 도입하면서 왜 경영에는 자동화가 안 되겠어요? 그러면 사내 이사를 어떻게 할 거냐. 그런 다음 중역들은 어떻게 할 거냐 하는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사장이 추천하는 사람들을 사외이사들이 모여서 논의하고 동의를 할 수 있도록 했어요. 동의를 못 얻으면 못하게 돼있어요. 그리고 꼭 복수 추천을 하도록 했어요. 사장이 복수로 추천하면 사외이사들이 그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결정하게 돼있어요."




-국내 다른 회사와 달리 KSS해운은 사외이사들의 책임과 역할이 매우 큽니다. 사외이사 영입에 신경을 남달리 쓰셔야 했겠습니다.

"사외이사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 볼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외이사로 좋은 사람 찾는데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지금은 다들 비난합니다만, 은행들이나 모든 기업들이 자기 친구나 아는 사람들을 앉히잖아요. 왜 그러냐하면 기밀이 누설될까봐 우려하는 거예요. 기업의 기밀이라는 것을 정치하는 사람들은 잘 몰라요. 법을 만들면서 그런 것은 생각도 안했어요. 사외이사는 사실 회사 기밀 누설 우려가 큽니다. 기밀이라는 게 무슨 위법한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경영정보 같은 거거든요. 그래서 지인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같은 업종에서는 사외이사를 뽑지 말아야겠다는 했지요. 그래서 해운업과 관계가 없는 사람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 좋은 분들이 우리 회사 사외이사를 맡는 일이 많았지요."

-해운업이 전문적 분야인데 업계 외의 사람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면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만족할 만한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우려는 없어요. 사내이사들이 충분히 정보와 지식을 제공합니다. 또 우리는 다른 회사와 달리 이사회가 거수기가 아니예요. 토론을 충분히 합니다. 한 번 이사회가 열렸다 하면 보통 3시간 이상, 아침 9시에 회의를 하면 점심을 먹고 또 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외이사들이 또 독하게 질문을 하기 때문에 사내이사들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요."

-전문경영인이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보통 대리인 문제가 제기되는데요.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우리 회사는 사장이 세 번까지 연임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요. 정관에 못을 막았어요. 3년, 6년, 9년 하도록 했어요. 실적이 아주 나쁜 경우 아니면 임기를 보장합니다. 단 9년 이상은 못 한다. 사외이사는 12년 이상 못 한다 정했고요. 사내 대표이사는 65세, 사외이사는 68세까지 정년을 늘려놨어요. 임기가 길어야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대리인 문제가 생겨요. 대주주에 잘 보일려고 단기 성과에 집착을 해요. 길게 못 봐요. 그러면 나중에 후배들이 고생을 해요. 미리 선투자를 했더라면 후배들이 과일을 따먹을 수 있는데, 그걸 등한시한단 말이에요. 자기 임기 때 꽃이 피도록 하고 그것만 따먹으려고 한단 말입니다."

하필 왜 9년으로 못을 박으셨나요.

"사람이 9년 넘어 10년이 되면 회사가 자기 개인 것이 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요. 긴장감도 떨어지요. 내 말이면 다 통한다는 그런 생각하게 돼요. 안 됐지만,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 김선홍 회장입니다. 자기가 사주처럼 경영을 했어요. 20년을 경영을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 모든 젊은 중역들을 잘라버리는 거예요. 미리 나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쳐내는 거예요. 개인회사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다가 망한 거예요. 그렇게 안 해요 해요. 경영전문인체제를 그런 걸 지양해야 합니다. 그래서 9년으로 못 박은 겁니다."

-KSS해운은 대표이사가 이사회의장을 맡지 않고 별도로 이사회의장을 두면서 대표이사 사장을 견제하는 투톱체제를 갖고 있는데요.

"내가 사장을 할 때인데 이사회라는 존재감이 없었어요. 내가 올리면 올리는 대로 이사회에서 다 통과되고 사외이사제도 없었고요. 그래서 규정을 보니 이사회 규정이 제대로 돼있지 않은 거예요. 안건을 올린다 안 올린다도 사장이 결정하게 돼있더라고요. 사장이 안 올리면 이사회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꼭 올려야 할 사항이 무엇이냐는 선별해 이러이러한 것들은 꼭 이사회에 올려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어요. 사장이 의장이니까 독단적으로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외이사 중에서 자기들끼리 선거를 통해 의장을 뽑도록 했어요. 안건도 의장이 사장한테 이러이러한 것은 올려라 요구도 하고요. 예를 들면, 국회의장이 행정부의 장관을 불러다 놓고 안건을 심의 의결하는 겁니다."

-처음에 경영에서 손을 떼실 때 아쉽지 않으셨습니까. 지금도 일체 간여를 안 하십니까.

"전혀 간여 안 합니다. 가령 8000만불 짜리 배를 도입한다고 하든, 누구와 계약을 하든, 또 배를 팔든 그건 이사회에서 알아서 다 합니다. 나한테 일체 보고 안 해요.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나중에 결산서 보고 알아요. 그걸 보고 관여하게 되면, 사장한테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장은 내 말을 무시할 수 없게 되고요. 그러면 책임이 나한테 있지요. 잘 되고 잘못되고에 대해 책임을 일체지지 않기 위해서는 관여를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지요. 다만, 정관 변경이라든가 회사의 구조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는 나한테 보고를 하고요."

-그러시면 회사에는 잘 나오시지도 않겠네요.

"처음에 내 사무실을 만들어주던데, 내가 회사에 잘 안 나오니까 비어있으니 회의실로 변해버렸어요. 여기가 내 방이었는데, 책상도 하나 없어요. 그냥 회의실이 돼버렸지요. 내가 사장을 할 때도 내 방은 다른 층에 두도록 했어요. 엘리베이터를 같이 안 타는 걸로 했어요. 한 10년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종업원들을 현관에서 만나인사를 해도 저 사람이 누구던가 하고 그랬어요. 낯선 사람이 인사를 꾸벅 하면 나도 인사 꾸벅 했어요.(웃음) 10년 정도 지나서 바꿨어요.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는 한 사람 끼어야되겠다. 인재 발탁 문제는 내가 관심을 가져야겠다 해서 요즘은 신입사원 채용 때 면접에 참석을 합니다. 그러나 점수 매기는 사람 중 하나예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면접관 여러 명 중 한 사람 몫만 담당해요."

-어떻게 보면 좀 유별난 기업문화인데, 잘 유지 계승되기 위해서는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직원들 모아놓고 아침 일찍 괴롭겠지만 여러 가지 강의를 많이 했어요. 내가 공부하고 싶어서도 하게 됐어요. 우리 회사는 에너지와 관련이 깊잖아요. 가령 에너지와 관련한 중동의 역사를 강의했어요. 강의한 것을 책을 만들기도 하고요. 중국의 역사 등 별걸 다 한 것 같아요."

-회장님 배가 지금 몇 척이나 되나요.

"지금 스물 두 척인가 스물 네 척이라든가 하던데요.(크게 웃음) 내가 경영을 안 하다 보니 잘 모르겠어요."

-해상운송의 특징상 화주가 국내외에 나눠 있을 것 같은데요, KSS해운은 해외 화주 비중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70%입니다. 처음부터 우리 회사는 리베이트를 안 주니까 국내에서 화주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내력도 있고요. 리베이트를 요구 안하는 해외 화주를 물색하다보니 해외 화주가 많습니다. 그 정책이 전화위복이 됐지요. 국제화를 만든 동기가 된 거예요. 우리 회사는 국제화가 빨리 됐어요."

-리베이트 관련해서는 회사 설립 후 무리베이트를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습니다. 책에서 회고하신 것보다 실은 더 힘들었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회사를 설립하고 화주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 큰 일이었어요. 70년대 초 한일합섬이 큰 회사였는데, 원료를 해외에서 들여오는데 해외 해운사를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국내 해운사에게 한 번 맡겨 달라 했지요. 항만 근로자들도 한국 선사를 좋아했어요. 일본 사람들이 들어오면 소통이 잘 안 됐거든요. 그런데 당시는 리베이트가 관례가 돼있어서 리베이트를 주지 않고 계약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러나 결국 내 신념 대로 리베이트 없이 계약을 했지요."

-동해조선이라는 조선사도 창업하셨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맡겼더니 방만 적자 경영이 누적돼 결국 팔아야 할 지경에 이르고 어음을 막지 못해 시청 앞 프라자 호텔에서 극단적 행동을 감행하신 적도 있던데요.

"당시 프라자 호텔 꼭대기 층에 커피숍이 있었는데, 주거래은행에서 자금지원을 거부당하고 골몰하다 그만 극단적 행동을 하게 됐어요. 탕하고 소리가 났는데 내 몸이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거예요. 유리가 상당히 두꺼운 거로 단단히 돼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까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건물은 유리를 단단한 걸로 했다는 거예요. 당시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사업하다 극단적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해요. 사업가가 얼마나 괴로우면 그런 결정을 할까 충분히 이해를 해요."

-그걸 이겨내야 성공으로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겨내야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쉽게 포기해요. 특히 재벌 2세, 3세들이 그래요.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이들은 은행을 찾아가지 못했어요. 맨날 은행에서 자기를 찾아왔거든요. 아쉬운 말을 못해봤거든요. 회사가 어려우면 가서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데, 못해요. 창업자들은 해요. 무대포로 가서 합니다. 나도 신탁은행에 일부러 찾아갑니다. 은행장이 안 만나줘도 찾아가요. 안 만나줄 거라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도 찾아가는 겁니다. 괄세가 대게 심했어요. 그래도 좋다, 꼭 왔다갔다 말해 달라 그런 의미였지요. 마음의 부채를 자꾸 안겨야 해요. 그러면 언제가는 한 번쯤은 만나줘요. 자기도 괴롭거든."

-일본에서 첫 배를 도입할 때, 상대해주지 않더라도 매일 보증사로 출퇴근했던 그 끈기와 배짱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식이지요. 담배 한 갑하고 책 한 권 갖고 가서 조그만 의자에 앉아 책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점심이 30분 전에 나와요. 안 그러면 직원들과 점심 식사로 곤란해지거든요. 또 점심 끝나고 난 뒤 2시 쯤 다시 돌아갑니다. 몇 달을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몸에 배어서 그래요. 아니, 내가 해운공사 직원으로 있을 때부터 경제기획원하고 재무부로 출근을 아예 그쪽으로 했으니까. 왜냐하면 자금을 얻기 위해서 국영기업체니까. 증자를 해야 배를 사오니까요. 그리고 증자를 하려면 예산이 통과가 돼야 하니까. 기획원하고 재무부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당시 해운공사 본사가 남대문에 있었어요. 서울역 가다보면 오른쪽에요. 그 옆에 기아산업 본사가 있었고요."

-종업원 지주들에게는 주식 배당금에다 성과공유제에 따른 이익까지 받으니 화수분을 안고 사는 거 같겠습니다.

"물론 이익이 나야 배당을 받으니까 일을 열심히 해야지요. 이렇게 종업원지주제를 운영하니 오너가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지 않아도 다들 자기가 주인이라는 자주성을 갖는 것 같아요. 보통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하면서 그냥 말이나 이따끔씩 당근으로 유도하는데, 그런 것은 오래 안 가요. 주인 대접도 안 하면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해야 소용 없어요. 그래서 주인을 만들어준 거지요. 경제적으로는 주식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성과에 대해서는 차별 없이 공유하게 되면 직원들이 다 회사의 주인이고 사장이 되는 겁니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

"최근 한 4년 동안 사고율이 제로였어요. 성과공유제를 도입한 이후 급격히 사고율이 떨어졌어요. 선원들이 사고 한 번 크게 내게 되면 이익이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러니까 단결이 잘 됩니다. 영업도 잘 해야 하고 짐 싣고 오갈 때도 사고가 안 나야 해요."

-경영세습을 않기로 선언하고 실행하고 계신데요, 자제들이 서운해 하거나 불만을 나타내거나 하지 않나요.

"우리 애들 마음이 나보다도 훌륭해요. 그래서 전문경영인제를 할 수 있었어요. 전문경영인체제에 대해 전혀 저항감이 없어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큰 아들이 대학을 다닐 때인데, 제 친구가 집에 놀러왔어요. 아들놈이 귀가하는 것을 보고 '어, 재홍이 왔느냐, 공부 열심히 해서 아버지 회사 물려받아야지!'라고 덕담을 했어요. 어, 그랬더니 이 녀석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그건 파더스 비즈니스예요'라고 벌쏘듯 말을 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아버지의 일이다, 나와는 관계없다는 거지요. 내 친구가 그 말을 듣더니 화를 크게 냈어요. 그런데 그 때 제 속마음은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내가 아들 교육은 잘 시켰다는 생각을 스스로 했어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 거 같습니다. 자제는 어떻게 두셨어요?

"저는 아들만 셋인데, 첫째와 셋째는 미국에 살고, 둘째는 한국에 사는데, 이 애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있어요. 첫째는 엔지니어고 막내는 물리학 박사입니다. 첫째는 모터쟁이예요. 모터 전문가입니다. 둘째가 운영하는 회사는 KSS해운과는 전혀 거래 관계가 없어요."

-노사갈등도 거의 없겠습니다.

"나는 해운공사에서 사주조합을 하려다 실패한 사람이에요. 사주조합 지분이 계속 줄어들어요. 안 되겠다 싶어 지분을 뚝 떼어 줬습니다. 직원들이 노동자(노)이면서 주주(사)입니다. 그러니 노사 갈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 그렇지만 노동조합과 사주조합이 엉켜 분간이 안 되면 안 돼요. 그래서 노동은 노동이고 주주는 주주로서 역할이 있는 것이니까 분리해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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