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관습적 `증권리포트`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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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관습적 `증권리포트`의 민낯

차현정 기자   hjcha@
입력 2019-05-27 18:00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그만큼 관습에 묶였다는 반증이죠." 기업분석에 있어 투자의견 비율을 공시하도록 강제한지 4년이 지났지만 외려 역행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증권사 애널리스트로부터 돌아온 얘기다. 그는 "괴리율 문제와도 판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자조섞인 그의 답에 반박할 말도 찾지 못했다. 금융당국 주도 아래 시행된 '매수의견 비율공시제'와 '목표주가·실제주가 괴리율 공시제'가 모두 증권가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한 발언이었다.


매수의견 비율공시제는 '팔라'는 의견 없이 '사라'만 있는 증권가 리포트의 신뢰성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다. 2015년 5월 도입된 이 제도는 투자자들이 현실적으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의견을 내도록 했다. 그러나 오히려 거꾸로 갔다. 정부가 매수 의견 일변도인 증권사 기업분석 관행을 개선코자 투자의견 비율공시제를 시행한지 4년을 맞았지만 도리어 매도 의견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4월부터 지난 3월까지 32곳의 국내 증권사들의 매수 의견 비중은 90.0%에 달한 반면 중립은 9.9%, 매도는 0.1%에 불과했다. 리포트 1000건 당 1건 꼴로 매도 의견을 낸 셈이다.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도 시행 첫해, 국내 증권사들의 매도 의견 비율이 0.6%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0.5%포인트 줄어든 셈이다. 매도 의견을 한 건이라도 낸 증권사는 대신증권과 KTB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신영증권 등 단 4곳에 불과했다. 미래에셋대우, KB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상황이 좋은 대형증권사들이 '매도 한 건 없는 증권사'라는 얘기다. 반면 외국계 증권사 15곳은 매도 의견 비율이 14.9%에 달했고 매수(55.3%)와 중립(29.8%) 의견 분포가 국내 증권사들과 큰 폭으로 엇갈렸다. 낯 부끄러워지는 수치다.

올해로 도입 3년차에 접어든 '목표가 괴리율 공시제' 역시 증권사에서는 안 통한다. 괴리율은 증권사가 리서치 보고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제시한 목표주가와 실제 주가 간 차이를 말한다. 실효는 커녕 아예 목표주가를 제시하지 않은 종목 보고서가 늘어나는가 하면 괴리율 차이는 외레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국내 상장사들의 1분기 실적 발표가 마무리되며 증권사들이 전망한 실적과 실제 기업이 발표한 실적 간 상당한 간극이 드러났다. 실제 한 금융정보업체가 증권사 3곳 이상이 1분기 실적 예상치를 발표한 231개 코스피·코스닥 기업들의 전망치와 실적 간 괴리율을 조사한 결과, 129개 종목들이 최소 10% 이상의 실적 차이를 보였다. 영업이익 기준 괴리율이 세 자릿수에 달하는 기업도 있었다.


사실 증권사 보고서에 대한 신뢰성 논란은 해묵은 얘기다. 증권사도 알고 시장도, 당국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문제 개선을 위한 증권사 스스로의 노력이 최우선돼야 하지만 증권사도 할 말은 있다. 회사의 주 수입원이 채권 인수·기업공개 주관 수수료인 만큼 기업고객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보고서를 쓸 때도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시장 흐름이다. '장밋빛 전망'이 맞아 떨어졌다면 문제 될 일도 없다. 국내 증시의 앞 날도 한가롭지 않다. 미중 무역분쟁의 풍파가 국내 증시에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기초체력까지 약해진 국내 증시의 대외 악재 민감도는 더 높은 상태다. 증권사 추천 리포트만 믿고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과 기관 투자가가 던지는 매물을 사들여 손실만 키우는 등 '봉 노릇'만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만약 애널리스트와 증권사들이 '한 가정의 생계를 위험하게 한 죄'로 엄벌에 처해진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허투루 낸 기업보고로 받는 벌칙이 얻는 이익보다 적으니 무리한 행태를 용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된다.

관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관용하는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둬서도 안 된다. 증권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한 것인 만큼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고민이 시급해 보인다. 무엇보다 눈치 보는 증권사가 되지 않기 위한 신뢰 회복이 먼저다. 시장은 냉정하다. 환골탈태 없이 관행을 고착화하면 자칫 자본시장과 애널리스트 모두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할 수 있다.

차현정기자 hjcha@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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