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절망적인 전기료 누진제 개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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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칼럼] 절망적인 전기료 누진제 개편안

   
입력 2019-06-12 18:07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정부가 내놓은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이 절망적이다. 여름철 냉방 수요에 대해서만 구간이나 단계를 조정하는 안들은 혜택이 제한적이고, 전기 소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똑같다. 어차피 불가능한 누진제 철폐를 넣은 이유도 알 수 없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건강하고 정의로운 선택은 불가능하다. 명분도 없고, 방법도 없다. 오로지 자신에게 돌아올 '상대적' 혜택만을 근거로 이기적 선택을 강요하는 개편안은 사회적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전기는 원한다고 펑펑 퍼줄 수 있는 복지예산이 아니다. 전기를 공급하려면 건설 단계에서부터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고, 운영 과정에서도 환경·경제·안전에 대한 적지 않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거대 발전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그런 전기의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고육지책이다. 원전 덕분에 전력 사정이 넉넉한 프랑스를 제외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누진제를 시행하고 있다. 누진 단계와 누진율은 천차만별이지만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더 높은 요금을 부과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어느 나라에서나 전기를 많이 쓰는 소비자는 요금 폭탄을 맞게 된다.
하필이면 전체 전기 소비의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정용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지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산업용이나 상업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없다. 산업·상업용 전기 소비를 억제해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장이 가동을 줄이고, 상점이 문을 닫으면 국가 경제가 죽어버린다. 산업·상업용 전기요금은 기업주나 상점주가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전기요금은 반드시 제품의 원가에 반영되어 소비자의 부담으로 되돌아오고,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1974년에 처음 도입된 누진제가 그동안 과도하게 운영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1979년부터 2016년까지 10배 이상의 살인적인 누진율이 적용됐다. 누진율이 18.9배였던 기간이 무려 28년이다. 물론 지나치게 과도한 누진제가 바람직한 것은 절대 아니다. 현대 문명의 꽃인 전기의 혜택을 누구나 누리도록 해주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전자레인지·인덕션레인지·공기청정기·건조기 등의 가전제품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누진제 개편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제도가 결합되어 있는 우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누진제 완화의 혜택은 대부분 전기를 많이 쓸 여유가 있는 가구에게 돌아가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혜택은 줄일 수밖에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진제 완화는 필연적으로 가정용 전기의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 누진제를 크게 완화했던 2016년 이후 가정용 전력 소비는 평균 6.3% 이상 늘어났다. 늘어나는 가정용 전기 수요를 감당하는 데만 매년 원전 1기 이상의 발전설비를 증설해야만 했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전·석탄화력은 줄이고, 안정성·경제성이 보장되지 않은 태양광·풍력·LNG는 늘이겠다는 반경제적·반환경적 탈원전 상황에서는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누진제 완화는 한전의 경영 악화로 직결되는 것도 역시 필연이다. 이미 작년의 누진제 완화로 한전은 3,500억의 부담을 떠안았다. 상장된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 운영은 주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한전의 적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흡수해준다는 일부 전문가의 주장은 황당한 억지다.

소비자들에게 누진제 완화의 명분을 제시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누진제 완화의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확실한 대책도 필요하고, 늘어나는 전기 소비를 위한 준비도 필요하다. 여름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겨울철 난방 전기 수요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현실적인 대책은 철저하게 외면해버린 포퓰리즘적 누진제 완화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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