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가오카오, 중국의 입시狂詩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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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가오카오, 중국의 입시狂詩曲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19-06-12 18:07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논설위원
1976년 4인방을 타도한 예젠잉(葉劍英) 원수(당시 국방부장)는 정국 수습을 위해 덩샤오핑(鄧小平)의 복직을 서둘렀다. 이듬해 7월 '부도옹'(不倒翁) 덩샤오핑이 복권되어 정계에 복귀했다. 덩샤오핑은 교육 개혁과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고 보고 10년간 폐지됐던 대학입학시험 '가오카오'(高考)의 부활을 결정했다. 1977년 11~12월 13세 최연소자에서 37세 최연장자까지 570여만명이 시험장에 몰려들었다. 27만여명의 신입생이 선발됐다. 가오카오를 치른 해를 기준으로 그들은 '77지'(級·학번)로 불린다. 1978년 여름 시행된 두번째 카오카오에선 610만명이 응시하여 42만명이 뽑혔다. '77지'는 1978년 봄에 입학했고, '78지'는 같은 해 가을에 입학했다. 이들은 유년 시절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3년간의 자연재해를 겪었고. 청춘의 한창 때에는 10년의 '문화대혁명'을 경험했던 고난의 세대였다. 개혁개방이 본격화되자 이들은 선봉에 서서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1977년 대학 입시의 부활은 새 시대를 여는 교육혁명의 여명이었다. 이후 응시자 수는 꾸준히 늘었다. 2009년 1020만명까지 증가했다. 그러다 2010년 957만명으로 떨어진 후 900만명대를 유지해오다 올해는 1160만명이 지원했다. 10년만에 다시 10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지난 6~7일 중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험을 치렀다. 860만명인 스위스 인구보다 더 많은 학생이 시험을 봤다. 이날 고사장 주변은 북새통을 이뤘다. 수험생들은 대나무 잎에 싼 찹쌀밥 '쭝즈'를 받으며 의지를 다졌다. '쭝즈'를 주는 것은 합격의 의미가 있는 쭝(中)과 발음이 같아서다.


중국 입시제도는 우리와 좀 차이가 있다. 입학 정원과 합격 점수가 지역별로 다르다. 지역별 교육 격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베이징(北京)대학의 이과 기준 합격선은 베이징 호적자는 686점, 랴오닝(遼寧)성 호적자는 690점이다. 베이징 거주 학생이 합격 점수가 낮고 더 많이 뽑혀 여러모로 유리하다. 소수민족의 경우 일부 특혜를 준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많다. 진학 조건이 좋은 도시로의 위장 전입이 흔하다. 이른바 '가오카오 이민'이다. 부정행위도 심각하다. 부정행위 적발 시 최고 7년의 실형까지 받을 수 있으나 오히려 부정행위는 갈수록 조직화·하이테크화하고 있다. 이를 막기위해 전파 수신장치를 부착한 드론이 띄워지고, 대리시험을 막기위한 안면 인식 시스템도 도입되고 있다. 매년 출제되는 논술 주제는 그 시기의 세태를 드러내기도 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치러진 올해 입시의 눈술 제목은 '중국 문명의 끈기'였다. 애국을 의식한 출제다.
합격자 발표 후에는 또 한바탕 소동이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에 대한 '사은회', 일가 친척들이 모이는 '축하연', 친구·지인·직장 동료 등을 초청하는 '축하회' 등 다양한 명목의 행사가 열린다. 초대받는 사람은 결코 기쁘지만은 않다. '합격 축하금'이라고 하는 가슴아픈(?) 비용 지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학비를 모으는 가정도 있다.

가오카오는 단 이틀 만에 정해지는 운명의 '한판 승부'다. 그 결과에 누구는 기뻐하고 누구는 슬퍼한다. '입신양명'의 길인 가오카오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경쟁 중 하나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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