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수 선임기자
![[예진수 칼럼] `현대판 유척`이 필요한 이유](http://contents.dt.co.kr/images/201906/2019061902102269027001[1].jpg?var=2409 "[예진수 칼럼] `현대판 유척`이 필요한 이유")
'정부 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데서 알 수 있듯 정부 예산집행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정책이 빗나가 이를 때워야 할 세금이 늘어나도, 각종 정책 지원자금이 술술 새나가 '혈세 자판기'라는 오명을 들어도 공무원들은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다. 잘못된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이다. 세목(조세의 종류별 명목) 마디마디에는 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과 고통, 힘겨운 노동의 땀이 배어있다.
지난 14일 기획재정부 배포 자료를 보면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2020년도 예산은 498조7000억원으로 500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은 이보다 훨씬 큰 510조원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전력 등 공기업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올 들어 세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는데도 '초수퍼예산'을 밀어붙이고 있다. 총선용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예산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들도 국가 부채가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늘어나서는 큰일 난다는 긴박감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무분별한 현금복지정책을 막기 위한 '현대판 유척(鍮尺)'을 만들어야 한다. 유척은 조선 시대 암행어사들이 마패와 함께 가지고 다니던 놋쇠측정기구다. 각 고을의 도량형을 점검하는 20cm 길이의 자다. 지금의 KS표준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방 수령들이 구휼미를 나눠줄 때는 정량보다 작은 쌀 됫박, 군포 등을 거둘 때는 정량보다 큰 용기를 써서 백성을 속이는지를 감찰하기 위한 도구였다.
국회와 시민감시기관 등은 현대판 유척을 통해 정부가 요구한 예산이 지나치지 않은지, 헛돈 쓰는 퍼주기 예산 항목은 없는지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길 바란다. 또 다른 유척을 통해서는 조세 부담률이 높다는 얘기가 왜 나오는지, 급증한 세금 부담으로 민간 경제계의 투자 의욕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는지 등도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지난 2년간 54조원의 일자리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고용의 질은 나빠지고 있다. 한국경제 중추인 30대 40대 취업자 감소가 장기화하고 있다. 불안정한 단기 공공 일자리만 잔뜩 늘어난 반면 제조업 일자리는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탓이다. 최저임금 정책과 맞물려 각종 편법이 성행하고 있다. 자영업자 A씨는 "한 청년이 자신을 잘라달라는 특이한 제안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청년의 제안은 해고에 대한 실업급여는 급여대로 받으면서 최저임금에 못 미치더라도 지금까지 받아온 임금의 70%만 받고 몰래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쓴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일자리 예산 뿐 아니라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각 부처의 예산 요구가 통제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과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으로 세수 여건은 갈수록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저출산속에 생산 가능 인구가 급속히 줄고있다. 한국은 고령인구 증가 등으로 복지 지출은 늘어나고 생산 활력은 떨어지는 '저활력 사회'가 돼가고 있다.
미래를 위해 예산 낭비를 막고 재정건전성 유지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정책 차원에서 창의성이 필요한 부분이 재정과 세제다. 일자리를 담당하는 기업의 역할과 중요성을 이해하면서 투자 활성화 대책을 총동원해야 한다. 6월 말에 수립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막혀있는 투자의 활로를 트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큰 폭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가 추락한 상황에서 인구 재앙이 현실로 닥칠 때는 어떤 재정·세제 정책이 옳았니 틀렸니 하는 논쟁조차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예진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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