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유모차 끄는 남성 많아
공립초교선 9월 교복 자율화
아일랜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놀랐던 점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남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평일 오후 시간에도 마트나 공원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남성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아일랜드가 결코 유럽 국가 내에서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높은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기업 남성직원 10명 중 1명만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한국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유럽은 정형화된 성역할을 깨부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그 변화는 광고에서부터 나타난다. 20일 인디펜던트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광고표준위원회(ASA)는 앞으로 기업들이 성역할에 고정된 내용을 담은 광고를 내는 것을 전면 금지하는 새로운 법안을 내놨다. 남성이 기저귀를 갈지 못한다거나 여성이 주차를 잘 못하는 모습 등을 앞으로 광고에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앞서 ASA는 64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서 "성역할 고정관념이 담긴 광고는 공공 및 사적 부문에서 성 불평등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밝혔다.
아일랜드의 유명 마켓인 리들(Lidl)은 지난 2016년부터 여성게일풋볼협회(LGFA)에 350만 유로(약 46억1700만 원)를 후원하며 여성 스포츠 후원사의 큰 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축구하는 내용의 광고를 유튜브 등에 내놨다.
더 급진적인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아이리쉬타임스에 따르면 카운키 위클로우에 있는 세인트 브리짓스 공립초등학교는 오는 9월부터 학생들이 성별과 무관하게 치마나 바지 교복을 입을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마에르 코스텔로 교장은 "여학생이 바지를 입고 싶어하거나 남학생이 치마를 입고 싶어하면 그렇게 하도록 둘 일"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복장을 입고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영국과 아일랜드가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완벽하게 탈피한 국가는 아니다. 가족 친화적 정책에 있어서는 여전히 유럽 내에서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첫 아이를 가진 아빠에게 주당 149파운드(약 22만1000원)로 2주간 법적인 유급 휴가를 주는데, 이는 유니세프 기준에서 0.4주치 급여에 불과하다. 스웨덴(10.9주), 독일(5.7주), 프랑스(5.6주) 등의 국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아일랜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일랜드는 아빠에게 주당 245유로(약 32만3000원)로 2주간 유급 휴가를 주는데 지난해 이 혜택을 받은 아빠는 전체 대상자의 40%에 불과했다. 육아 휴직을 선택할 만큼 급여 등에서 메리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도 변화는 꾸준히 일고 있다. 아일랜드 유명 맥주인 기네스를 소유하고 있는 디아지오(Diageo)는 오는 7월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성별과 무관하게 최대 26주의 유급 육아휴직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디아지오는 베일리스, 스미노프 등 주류도 소유하고 있으며 아일랜드에서만 12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2주 간의 법적 유급 휴가 기간을 2021년까지 7주로 늘릴 계획이다.
더블린(아일랜드)=조은애 통신원 echoscv@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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