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애널`은 되고 IB는 안 된다?

차현정기자 ┗ 삼성 J-REITs 부동산 펀드, 수탁고 1000억 돌파

메뉴열기 검색열기

[DT현장] `애널`은 되고 IB는 안 된다?

차현정 기자   hjcha@
입력 2019-06-24 17:53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주 80시간도 부족할 때가 많은데…. 세상에 어느 나라 IB가 오전 9시에 나와 저녁 6시에 퇴근한답니까. 적합한 결정이라고 생각됩니다."(A 증권사 IB 부문장) "애널리스트는 되고 IB 인력은 안 된다니…. 명확한 기준이 뭔지 혼란스럽습니다."(B 증권사 IB 담당 직원)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금융투자업계의 주 52시간근무제 시행을 놓고 증권사 IB 본부 내 뒷말이 무성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임원과 직원 간 온도 차가 극명하다. 정부가 최근 재량근무제 적용 직군에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를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키로 하면서 IB만 제외했다는 이유에서다.
재량근무제는 업무 수행 방법을 노동자 재량에 맡길 필요가 있는 경우 노사 합의로 소정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노사가 합의한 만큼의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정해진 임금을 주는 것으로 결국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예외 대상이 되는 셈이다.

1년 간 유예됐던 금융권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의 7월 시행을 앞두고 대부분 증권사는 시범 운용 등을 통해 새 제도에 적응할 준비 작업을 거의 마쳤다. 주요 증권사는 이미 정해진 퇴근 시간에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PC 오프(off)'제를 도입했거나 선택적 근로시간제, 자율(시차)출퇴근제 등을 운용했다.

대체로 하루 8시간씩 5일, 주 40시간 근무를 기본 원칙으로 세우고 리서치센터, 해외시장 거래, 회계, IT 등 부서는 업무 특성에 따라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을 적용해 근무시간대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와 IB 인력 등 일부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고 결국 정부에 보완책 마련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용노동부가 재검토할 의사를 드러낸 건 지난 20일이다. 이날 열린 전국기관장회의에서 이재갑 장관이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가 고도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직종으로 자기 책임하에 업무를 수행해 재량근무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재량근무제는 노동부가 시행령과 고시 등으로 정한 업무에만 적용할 수 있다. 노동부가 고시한 재량근무 대상은 연구개발, 신문·방송 업무, 광고 및 디자인, 법무·회계·노무관리 특허 위임이나 위촉을 받은 감정평가 또는 상담·조언 업무 등이다. 여기에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업무가 추가되도록 노동부 장관이 고시를 개정하겠다는 얘기다. 고시가 개정되면 애널리스트 1000여명과 펀드매니저 1만6000여명이 재량근무를 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인 주52시간 근무제의 원칙과 예외를 정하는 과정에서 노사 간 마찰이 빚어질 수 있겠으나 일단 한숨 돌렸다는 평가다.

반면 IB는 검토 직군에서 빠졌다. 재량근무 여부가 애매해 적합하지 않아 향후에도 재량근무 적용은 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해외 딜이 많은 IB 업무 특성상 밤 근무가 잦고 장·단기 프로젝트에 따라 일이 계절별로 몰리는 경우가 많아 52시간 준수가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52시간제와 무관하게 일하는 임원들에겐 재량근무제는 남 얘기에 불과하겠으나 IB 부문 종사자들에게선 불만이 쏟아진다. 실제 의견수렴을 거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단다. 애널리스트는 되고 IB는 안 된다는 기준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애널리스트가 작성하는 리포트의 성과측정이 용이하다면 IB 부문도 성공 딜이라는 성과와 보상 간의 상관관계가 뚜렷하다. 딜의 성공을 측정지표로 가늠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기왕 일본 재량노동제를 벤치마크한 재량근무제라면 탈시간급제 도입도 검토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일본은 지난 4월 탈시간급제를 도입함으로써 직무 특성과 봉급 기준을 동시에 고려하는 특례를 허용했다.

당장 IB 조직에 상당한 부담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조차 "증권사 IB 조직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으로 무작정 인원을 늘린다고 해결될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근무시간 때문에 탈(脫) IB 인력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는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성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 전환 없이는 결코 인재를 지킬 수 없다.

차현정 산업부 증권팀장 hjcha@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