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소주성`이 신앙은 아닐진대

입력 2019-06-26 18:10

성승제 정경부 기자

전임 경제학회장들이 정부에 보낸 메시지는 뚜렷하고 분명했다. 한국경제가 당분간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며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과 기업환경 개선이 없다면 성장 동력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책 전환을 안 하면 추경도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24일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기로에 선 한국경제, 전(前) 한국경제학회장들에게 묻는다' 특별좌담회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날 좌담회는 조장옥 교수(46대), 구정모 교수(47대), 김경수 교수(48대) 등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한 경제학 대표 학자 3명이 한 자리에 모여 진행됐다. 사회는 배상근 한경연 전무가 맡았다. 한국경제학회는 명실상부한 경제학 대표 학회이자 다른 경제학회들의 모(母)학회 역할을 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책임론을 제기하는 다소 격한 발언이 나오기도 했지만 핵심은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끌고 가야 한다는 애정 어린 조언이 주류였다. 전임 학회장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역시 소득주도성장의 폐해였다. 올 1분기 한국경제 성장률이 전 분기대비 -0.4%로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경기가 부진한 데는 정치적 실험(소주성), 역량부족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우리 경제를 더 나빠지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의 대전환이 있어야 내년 후반기에나 경제가 개선될 수 있는데, 옹고집 정권의 불통으로 인해 정책 선회를 기대할 수 없다는 답답함도 토로했다. 흥미로운 것은 참석자들의 반응이었다. 한 참석자는 좌담회가 끝날 때 유독 도드라지게 박수를 치며 전임 학회장 발언에 공감을 표시했다. 말 한마디 놓칠 세라 이들의 말을 꼼꼼히 메모하며 경청한 참석자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전임 학회장들의 지적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올 하반기 우리나라 경제전망률 전망치를 최근 2%에서 2%대 초반으로 일제히 하향조정했다. 국내 연구기관은 한발 더 나아갔다. 한 연구위원은 체감 경제성장률 지표는 이미 1%대로 주저 앉았다고 지적했다. 2%에서 2%대 초반 경제성장률 전망도 후한 점수를 줬다는 얘기다.

고용동향 시장은 어떤가. 통계청에 따르면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 경쟁력이 성장동력을 잃으면서 우리 경제의 허리를 맡는 30, 40대 고용시장은 14개월째 뒷걸음질 치고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와 민간에서 바라보는 시각차다.
정부는 지난달 고용률이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고용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고 했다. 물론 전체 고용시장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60세 이상 단기 근로자들만 늘었을 뿐이다. 지난달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35만4000명 증가해 전체 취업자 증가 폭을 크게 웃돌았다. 이들의 일자리는 민간이 아닌 국민 세금으로 만들었다. 정부의 곳간이 비게 되면 언제든 잃게 되는 불완전 일자리다. 당연히 경기개선에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투자시장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기업에서 고용을 늘려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데 지금은 전체 고용시장이 늘어났음에도 경기는 저성장의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나타난 '부작용 효과'다.

정부는 경기를 끌어올리고자 '추경 카드'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효과가 일어난다 해도 일회성 단기에 그칠 추경에 야당은 순순히 응할 턱이 없다. 현재의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추경을 해봐야 효과가 없고 노인 등 특정 계층에게만 혜택이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반합. 헤겔의 변증법 논리 삼 단계로 하나의 주장인 정(正)에 모순되는 다른 주장인 반(反)이 더 높은 종합적인 주장인 합(合)에 통과되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이미 저성장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주요 경제지표까지 줄줄이 낙제점을 받은 상황이다. 이제는 정부가 정만 고집하지 말고 반을 포용해 더 나은 합을 찾아야 한다. 백번 양보해 소주성이 올바른 정책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소주성'이 신앙이 아닐진대 잘못된 믿음에서 어서 벗어나길 바란다.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진심으로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성승제 정경부 기자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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