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지라시에 휘둘리는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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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지라시에 휘둘리는 한국사회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19-07-02 18:01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송혜교, 송중기 부부가 이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지라시(정보지)가 기승을 부렸다. 이혼 사유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아무 근거가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며 지인에게 재전송해 삽시간에 온 나라에 퍼졌다. 부부지간의 일은 친한 지인도 제대로 알기 힘들지만, 누리꾼들은 마치 곁에서 본 듯이 확신하면서 두 사람의 잘잘못을 논했다.


이렇게 지라시에 사람들이 휘둘리는 사건이 반복된다. 보통 '받은글'이라는 메시지로 지라시가 전해지는데 많은 사람들이 정식 보도보다 이것을 더 신뢰하면서 적극적으로 유포에 나선다. 그것이 진실의 전파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라시의 신뢰성은 매우 떨어진다.
지라시는 과거에 증권가 정보지라고 해서 증권 관계자들이 수집한 정보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매체였다. 이때는 지라시가 실물 문서 형태였고, 대가를 지불해야 볼 수 있는 고급정보로 대접받기도 했다. 그러다 기자, 기관원,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 모인 몇몇 정보교환 모임에서 취합한 내용이 지라시 파일 형태로 제작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지라시가 메시지로 전파되는 요즘엔 누구라도 지라시 형식의 파일을 만들어 메시지로 보낼 수 있다.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메시지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지라시의 신뢰도는 사실상 '0'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10월에 나영석 PD와 여배우의 염문설 지라시가 나타났다. 삽시간에 소문이 번졌고 두 사람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경찰이 유통 경로를 한 단계씩 거슬러 올라가 5개월 만에 최초 유포자를 검거했다. 알고 보니 출처가 두 갈래였다. 첫 번째 버전은 20대 프리랜서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가 대화형식으로 만든 문서를 지인들에게 전송했고, 몇 단계를 거쳐 이를 받은 30대 회사원이 지라시 형태의 문서로 재가공해 회사 동료들에게 전파했다. 이것이 약 50단계를 거쳐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두 번째 버전은 한 방송작가가 다른 작가에게 전송한 것인데, 이것이 약 70단계를 거쳐 전국에 확산됐다.

2015년엔 이시영 지라시 사건이 있었다. 소속사 사장이 이시영 동영상을 만들었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디테일한 내용으로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한 대학 동문 모임에 참석한 기자가 허위로 재미 삼아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다른 기자가 다음 날 지라시 문서로 만들어 13명에게 전송했다. 이것이 한 달 만에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슈가 됐다.




2016년엔 이승기 지라시 사건이 있었다. 연상 메이크업 아티스트 여성이 이승기의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파파라치 매체가 취재 중이라는 상세한 내용이었는데 이 역시 모두 거짓이었다. 이동통신사 직원이 사내 업무 메신저에 지라시 형태의 글을 꾸며 올렸는데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며 사진이 노출된 여성은 최초 유포자의 동료직원이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허술한 과정을 거쳐 지라시가 만들어지고 유포되는 것이다. 이렇게 근거 없는 자료인데도 사람들이 쉽게 믿는 것은 보통 지라시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송송커플 이혼에서도 사람들은 둘 중 한 쪽의 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파경에 이르렀을 거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마침 그때 지라시가 그런 내용을 상세하게 담아주니 그대로 믿어버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생각도 지라시의 가공성을 높인다.

유명인에 대한 내밀한 정보를 흥밋거리로 소비하려는 심리도 있다. 그것이 보호해줘야 할 타인의 사생활이고, 그런 소문으로 인해 대상자가 엄청난 고통을 겪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내용일수록 더 많이 소비하고 지라시 제작자들도 거기에 부응한다. 이래서 주기적으로 '지라시의 난'이 터지는 것이다.

이것을 근절하려면 타인의 내밀한 정보를 흥밋거리로 소비해도 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나에겐 가벼운 재미일 뿐이지만 당하는 사람에겐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의 고통이다. 그런 고통을 재미로 가하는 것이 얼마나 비윤리적인지 깨달아야 한다. 지라시를 만들고 유통하는 행위 모두 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사생활을 존중하고 정보의 신뢰성을 판별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성숙돼야 상황이 개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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