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시작은 미약했다! 中공산당원 9000만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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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시작은 미약했다! 中공산당원 9000만 돌파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19-07-03 18:04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논설위원
1921년 7월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지의 한 허름한 건물에서 경찰의 감시를 피해 중국 공산당 1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렸다. 전국대표대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었지만 당시 당원 수는 50여명에 불과했다. 이후 세를 조금씩 확장했지만 1923년 3차 대회 때는 420명으로 늘어난 정도였다. 당원 확장은 1924년 1차 국공합작이 성사되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농민,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세력을 늘려나가 1925년 1만여명, 1927년이 되자 5만7000여명으로 불어났다. 국공합작으로 국민당의 탄압을 피하면서 국민당의 전국조직을 활용한 성과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1927년 4월 12일 장제스(蔣介石)의 쿠데타로 공산당 조직이 궤멸적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었다. 국민당의 추격을 피해 대장정에 나서고 2차 국공합작 등을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당원을 확보한 정당으로 도약했다. 마침내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1949년 10월 신중국을 건설했을때 당원 수는 449만명에 달했다.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의 확대 노선으로 당원 수는 급증했다. 국가정부 조직은 물론 인민해방군과 공안, 기업 등 각 단위 및 농촌지역의 촌(村) 단위에도 공산당 기층조직이 결성된 데 따른 것이었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8년에는 약 3700만명으로 증가했고, 2002년 장쩌민(江澤民) 총서기의 사영 기업가 입당 허용으로 증가 추세에 탄력이 붙었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엔 성장세는 둔화되는 추세다. 당원들의 질을 중시하는 방침 하에 입당 심사를 까다롭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당원 수는 계속 늘고있다.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8주년을 맞아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는 2018년 말 현재 당원 수가 9059만4000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9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전체 인구의 6%다. 대략 국민 16명 당 1명이 당원이라는 계산이다. 전체 당원 가운데 여성은 2466만5000명으로 27.2%, 소수민족은 664만5000명으로 7.3%를 각각 차지했다. 개혁·개방 이후 입당한 당원 비율은 80%를 넘어섰다. 20~30대 젊은층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이며,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 보유자가 절반에 육박했다.




신중국 성립 70년 만에 당원 수가 2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독일의 인구(약 8300만명)를 넘어서는 규모다. 이 당원들 가운데 불과 376명이 공산당 중앙위원회(중앙위원 204명, 후보위원 172명)를 구성한다. 그 중 25명이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마지막 7명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는 것이다. 14억을 통치하는 7인이다.

하지만 수가 증가하면서 질과 성격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당원은 공산당을 대표하는 엘리트였고 당원증은 '공산당 신앙'의 상징이었다. 중국 공산당 역사는 당원들의 '피의 역사'였다. 이제는 좋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면 쉽게 당원이 될 수 있다. 당원이 됐다고 꼭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취업용으로 자격증 하나 더 받는 셈 치고 가볍게 입당하는 젊은이도 많다. 당비 안내는 당원도 많고 당기 위반은 다반사다. 오히려 주식투자하는 사람들이 공산당원보다 더 많다.

그럼에도 당원이 9000만명을 넘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중국 공산당이 새싹이 돋지 않는 고목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뿌리 깊은 당원들의 노력으로 향후 민주적 개혁까지도 기대해본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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