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대통령·권력이 아닌 `국민에 무릎 꿇겠다` 약속하는 것" [김홍신 前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이규화기자 ┗ "조국사태, 집권세력이 일으킨 소모전… 좌편향 중도 이탈 전환점" [이언주 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메뉴열기 검색열기

"정치는 대통령·권력이 아닌 `국민에 무릎 꿇겠다` 약속하는 것" [김홍신 前국회의원에게 고견을 듣는다]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19-07-04 18:13

언론 기능 좋아지고 시민운동 활성화… 사회 투명해졌지만, 더 비겁하고 교묘해진 면도 있어
사리사욕 챙기는 정치인들, 국민 배신하는 행위, 자신들이 '주인' 아닌 '머슴'이란 것 알아야
정파 이익에 매몰된 정권, 삼권분립 제대로 안 지켜… 어느 시대나 역사적 비판 받을 수밖에


김홍신 前국회의원·작가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홍신 前국회의원·작가




김홍신 작가는 "정치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권력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며 "오로지 국민에게만 무릎을 꿇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인간시장' 시대와 비교해 많이 투명해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권력 내부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는 사리사욕 채우기와 정의를 가장한 위선은 더 교묘해지고 비겁해졌다고 했다. 또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고 개인의 행복을 찾는 길에 문학은 여전히 방부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창작을 하며 극한을 경험한다"며 작가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지옥같은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1980년대 20대였던 사람들을 '인간시장 세대'라고도 하거든요. 저도 그 세대인데, 몇 년 전 '인간시장' 완간 30주년 기념으로 다시 출간하셨지요?

"1981년 9월 처음 출간했는데, 모두 검열을 거쳐 나온 거잖아요. 당시 검열이 보통 엄한 게 아니었어요. 주인공 이름을, 이미 언론에서 많이 밝혔지만, 권총찬으로 했어요. 검열을 받으면서 이걸 못 쓰게 하니까 성만 살짝 바꿨어요, 장총찬으로. 두꺼운 전화번호부 있잖아요. 거기에 아무리 찾아봐도 총찬이라는 이름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총찬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아무튼 새론 발간하면서 검열 전 원본으로 출간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손질 작업도 작업이려니와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한 작품 그대로 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그대로 냈어요."

-검열 받기 전의 원본은 따로 보관하고 계셨나요.

"검열관들이 손을 댄 부분은 당연히 알고 있지요. 내 소설이 올라오면 검열관들이 서로 읽으려고 했대요. 재미있으니까. 읽으면서 마음대로 고치는 겁니다. 그래서 검열관들과 전쟁을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피해가는 방법이 생기더라고요. 상징과 비유도 많이 넣게 되고요. 더군다나 인간시장이 나오자마자 한 달 만에 10만부를 찍는 등 폭발적으로 팔려나가니까 검열관들도 더 기를 쓰고 검열을 강화하고 저는 그것을 빠져나가기 위해 의미를 교묘히 숨겨놓기도 하고 전쟁을 벌였지요."

-당시 인세 수입이 쏟아져 들어왔겠습니다.

"제가 운전면허가 1981년 10월 면허예요. 출판사에서 10만부를 넘기니까 '포니2' 차를 사줬어요. 당시는 작가가 차를 갖고 있는 경우는 없었어요. 고작 해야 최인호 선배, 이어령 선생, 유현종 선배 같은 분들이 차를 갖고 있었어요."

-100만 부 돌파 시점이 언제였지요.

"1편이 출간되고 나서 2년 6개월이 지나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어요. 출판사에서 차를 바꿔주더라고요. 면허증만 보면 그 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인간시장'을 지금 읽어봐도 80년대 모습이 선명히 떠올라요. 흔히 소설이 '통속적' 의의가 있다고 하는데 이 때문이 아닌가요.

"그 때 별별 취재를 다 했고 제보도 많이 들어왔어요. 기자들이 사건현장에 가면 김홍신이 먼저 와있더라는 말도 돌았어요. 인간시장에 가짜 휘발유 만드는 법을 썼어요. 사람들이 믿지 않았지만 그게 다 조폭들로부터 만드는 법을 취재해 쓴 거예요. 그러니까 뒷골목 음습한 언어까지 쓸 수 있었고요. 당시 1,2,3편이 출간되면서 온갖 협박을 다 받았어요.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협박 공갈도 많았어요. 우리 애들은 협박 공갈 전화를 많이 받으니까 나중에는 적응하더라고요. 아내가 아이들을 유괴한다는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더군요."

-'인간시장' 시대와 지금과 비교하면 그래도 우리 사회가 많이 깨끗해지고 투명해지지 않았습니까.

"좋아졌어요. 그 원인을 찾아봐야 돼요. 언론의 기능이 좋아졌고 시민운동이 활성화됐어요. 스마트폰, CCTV, 블랙박스 같은 것들이 감시를 하고 네티즌들이 매서운 눈을 갖게 됐고요. 국민적 안목이 전체적으로 향상됐어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더 비겁하고 잔인하고 교묘해진 면도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들이 교묘하게 사리사욕을 채우는 거예요. 국민을 배신하는 것도 그렇고요.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것도 결국 들켰잖아요. 제가 '인간시장이 안 팔리는 시대가 빨리 와야 한다'고 했어요. 세상이 많이 나아졌지만 더 좋은 세상이 돼야 해요."

-더 투명하게 업그레이드 돼야 할 텐데요.

"통일을 전제로 생각해보자고요. 지금 바뀌어야 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권력과 정치 그 다음에 경제계, 사회지도층, 검경 등 정신 차려야 해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권력에 무릎 꿇으면 안 돼요. 국민에게만 무릎을 꿇어야 해요. 그래야만 나라가 제대로 서고 그 사람들이 역사에 남아요. 그래서 저는 아까도 말했지만 국회의원이 될 때 임기를 안 채우고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임기를 안 채우려면 옳은 길을 가야 되잖아요. 그리고 국민에게만 무릎을 꿇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나를 로비하는 순간 공개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의정활동 평가를 잘 받은 것 같아요. 정치와 권력이라는 게 국민의 머슴이지 주인이 아니거든요."

-정의의 보루가 사법부인데, 사법부가 권력에 의해 흔들리며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권력이라는 게 어느 시대나 역사적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권력을 누리려고 하면 안 돼요. 삼권분립이 왜 있냐고요? 완전히 독립적 개체로서 인정해줘야 해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이용해서는 절대 안 돼요. 서로 존중해줘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법행정이 독립적 중립적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제도는 돼 있는데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거든요. 예를 들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있잖아요. 우리 중앙선관위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만큼 공정한 중립기관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행정기관은 대통령이 바뀌면 취임식 날 0시를 기해 대통령 사진이 바뀝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대통령 사진이 없어요. 제도를 정말 잘 운용하고 있는 대표적 기관이 중앙선관위입니다. 사법부 법원이든 검찰이든 중앙선관위처럼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지킬 수 있도록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 원칙을 정권이 지켜야 하는데, 어떤 정권도 안 지켰어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국익이나 헌법적 이익보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된 결과입니다. 100% 원칙을 지키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데, 안 지켰어요. 1%만 안 지켜도 거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 1%까지 꼭 지켜야 합니다. 99%를 지켰다고 지킨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문제예요. 어느 정권이든 정권이 끝나고 나면 비판을 받고 혹독한 회초리를 맞는 이유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비판을 피해가려고 하면 안 되고, 비판을 수용하며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언론, 시민운동, 시민사회, 네티즌 등의 역할이 중요한 겁니다."

-중앙선관위 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계신데, 어떤 기관인가요.

"선거를 치러보니까 쓸 데 없는 비용이 많이 나가잖아요. 좀 정직하고 올바른 사고를 가진 정치사회 지도자를 양성하자는 의미로 중앙선관위가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를 고민하다 만들었어요. 원장을 고민하다 저를 선택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국민을 위한 일꾼을 만드는 데 거들자 하고 참여하게 됐어요. 중앙선관위가 만들었지만 공직은 아닙니다. 1년 단위로 한 기수 당 40명밖에 안 뽑아서 1년 동안 농축적인 교육을 합니다. 강사진을 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화려한 강사진이에요. 전직 총리에서부터 시작해 대법관, 헌법재판관, 대학총장 분들이 와서 강의를 합니다. 저도 간간이 특강을 해요. 관리도 하고요. 출결관리가 매우 엄격합니다. 수강은 물론 사회봉사활동 등을 다 이수해야 돼요. 출신 중에 지금 국회의원, 시장, 군수도 나오고 그랬어요. 입교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수강료는 없고요."

-'인간시장' 2부 집필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시놉시스는 다 끝났어요. 3권 분량으로 생각 중인데, 좀 더 기다렸다 쓰려고요. 정치를 그만두고 바로 썼으면 이미 썼을 거예요. 그런데 그 때 발해를 쓰느라고 못 했어요. 딱 그 시간 지나고 나니까 못 쓰겠는 거예요, 내용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얘기니까.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전 옳고 그 사람들이 틀렸다고 봤거든요. 그런데 세월을 지내놓고 보니까 인생에서 나만 옳은 법은 없더라고요. 그들도 옳은 게 많았어요. 그러기 때문에 쓰기가 쉽지 않아요."

-실명이 들어가나요.

"실명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니셜로 써도 다 알 만해요. 그 사람들도 옳은 게 있는데 그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2부 주인공도 장총찬입니까.

"장총찬이 세월 지나서 국회의원이 되면서부터 내용이 시작됩니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서 저처럼 어떤 계기가 돼 국회의원이 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최근 소설 작품으로 '바람으로 그린 그림'이란 작품이 있잖아요. '인간시장' '대발해'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연애소설인데, 쓰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재작년에 나왔어요. 사랑이야기인데, 앞부분은 제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거예요. 제가 작품 속 세례명 '리노'예요. 중반을 넘어가면 완전 픽션이 되고요. 왜 이 소설을 쓰게 됐냐면, 발해를 쓰고 나서 진이 빠졌어요. 발해를 쓸 때 너무 힘들었어요. 극한의 사고를 했을 뿐더러 '내가 이걸 쓰면 뭐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어요. 아랫입술이 부르트고 오른손이 마비돼 목까지 전이됐고요. 불면증까지 심하게 앓았어요. 아직도 치유가 안 됐어요. 7년간 소설을 못 쓰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영원히 소설을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발해를 썼기 때문에 이젠 죽어도 좋다는 생각도 했어요. 발해 쓸 때 주변에서 얼마나 말린 줄 아세요? '당신 그러다 죽는다' 그랬어요. 하지만 저는 '쓰다 죽겠다'고 했어요. 심지어 '최명희 선생을 한 번 봐라, '혼불'을 쓰고 죽었지 않았냐' 하는 말까지 들었어요. 고민을 하다가 남은 인생에서 소설을 못 쓰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 이르자 다시 소설로 돌아가자고 다짐했어요. 그럼 어떻게 할까, 사랑 이야기를 쓰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쓰게 된 게 '단 한 번의 사랑'과 '바람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창작의 고통이 독자들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인 것 같습니다.

"햇빛 안보고 물 적게 마시고 하루에 12시간 책상에 앉아서 하루에 20여매 쓰고 이러니까 결정적으로 고통을 받는 게 요로결석이에요. 저는 요로결석 두 번 수술을 했어요. 그 다음에 허리에 병이 와요. 허리를 못 쓰게 돼요. 그러니까 소화불량에 시력이 나빠지고요.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소설만 생각하면 트라우마가 생겨요. 그래서 7년간 소설을 못 쓴 거예요. 사랑이야기를 쓰고 나니까 트라우마가 사라져 이제 다시 인간시장 2부를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겁니다. 또 다른 소설도 쓰고 있고요."

-어떤 장르인가요?

"진도가 영 안 나가요. 사랑이야기는 아니고요. 남북 민족의 정신사적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남북관계 속에 안 인간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이념적 갈등을 한 번 깊이 다뤄보고 싶어요. 책 제목도 미리 정했어요.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그대로 쓰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제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제 단편소설 중에 '김일성전'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한자도 북한의 김일성과 똑같아요. 이름 때문에 놀림 받고 고통 받는 것 있잖아요. 요즘이야 이름 변경이 잘 되지만 옛날에는 잘 안 됐거든요."

-요즘 신진 후배 작가들의 창작 열정을 어떻게 보세요.

"열정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신진작가 중에 뛰어나 작가들이 꽤 많아요. 한국이 경제성장만 제대로 해서 지금보다 위상이 높아지면 한국문학이 국제적으로 만만치 않은 대우를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시민운동가, 정치인으로 살아오셨는데 결국은 우리 사회 발전과 개인의 행복을 위한 노정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나온 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시나요.

"왜 행복이 개인의 목표냐면, 죽음 때문이예요. 죽음이 없다면 인문학을 하고 행복을 추구할 필요가 없어요. 말하자면 죽기 전에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삶은 누릴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건강부터 시작해서 자유로움,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내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가장 존귀한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돼요. 그럼 내가 주인이고 내가 존귀하니까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존귀하게 되는 거예요. 물 공기 햇빛 음식 얼마나 존귀해요? 하물며 사람이랴? 그러니까 사람을 아껴줘야 하는 겁니다. 고래로부터 배고픈 사람 밥을 뺏어먹으면 안 돼요. 아픈 사람 약을 뺏으면 안 돼요. 배우고 싶은 사람을 못 배우게 하면 안 돼요. 이 기본을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해요. 그러려면 나만 소중한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해요. 인간은 홀로 살 방법이 없어요. 인간은요 어떻게 지구의 주인이 됐냐면 더불어 살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소설가는 그런 더불어 사는 세상이 곪지 않게 소설로서 방부제 역할을 하는 신성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창작의 고통과 희열은 소설가의 운명입니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