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외교서 원인 제공, 기업에 책임 떠넘기기식 무책임
지금부터 소재산업 키우자고?… 한중일 협력 체제 모르는 말
제조업 중심 실물경제 무너져… 외교 실마리 타이밍 노려야"
박동욱기자 fufus@
전경련 주최 '한일관계 현황과 과제, 특별대담
"지금부터 소재 산업 육성한다는 게 가당치 않다." "원인 제공은 정치, 외교 쪽에서 했는데 책임은 기업이 지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최대한 빠르게 한일 관계를 복구하는 게 급선무다."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주최한 '한일 관계를 통해 본 한국경제의 현주소와 해법 특별대담' 긴급 좌담회는 윤증현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의 작금의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조언이 쏟아졌다.
이날 좌담회에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윤 전 장관과 윤 전 원장은 패널로 참석했다.
윤 전 원장은 외교 전문가답게 한일 외교적 접근에 대한 생각을 밝혔고, 윤 전 장관은 현 상황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둘 모두 일본의 경제보복에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면서도 장기전을 대비하는 우리 정부에 시간을 끌수록 양패구상(兩敗俱傷)만 커질 것이라며 "조속한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좌담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관련해서 위기 정도를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는 윤 전 장관은 "(현 상황은) 1997~1998년 외환위기와 지금의 경제 위기와는 차이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에는 유동성의 문제가 있었을 뿐 실물 경제는 탄탄했지만 최근 2~3년 동안 우리 경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실물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며 "여기에 외환 금융위기까지 겹치면 복합적인 위기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전 장관은 이어 최근 정부를 중심으로 "우리도 소재산업을 지금부터라도 키우자"는 주장에 대해 사실상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소재 부품 영역에서 일본이 우위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기초 과학이 발전돼있기 때문"이라며 "수십년간 우리도 소재 부품에 대한 역량을 키워야 된다고 외쳐왔는데, 이제야 국가적인 역량을 쏟는다고 되진 않을 일"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이어 "일본의 소재 부품을 들여와서 한국이 중간재를 만들고, 이것을 통해 중국이 완제품을 만드는 3국간 글로벌 협력 체제를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가 우위에 있는 중간재를 두고 소재에 매달리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것"이라며 "(그럼) 결국 우리의 자리를 중국이나 미국이 차지하도록 두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윤 전 장관은 물론 윤 전 원장 역시 "외교 문제"라며 "하루 빨리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윤 전 원장은 "외교적인 조약이 이번 갈등의 시발점이었기 때문에 해결을 위해서도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 역시 공감하며 "윤 전 원장의 의견처럼 원인 제공은 정치, 외교 쪽에서 했는데 책임은 기업이 지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다만 일본의 문제 제기를 바라보는 시각과 대안에는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과거에도 독도, 역사교과서, 위안부 등 문제로 일본과 갈등이 있었는데, 최근의 상황은 과거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라는 권 부회장의 질문에 윤 전 원장은 "과거 일본과의 갈등에 있어서 한국이 도덕적 우위에서 일본을 공격하는 입장이었다"며 "그러나 최근 갈등의 전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조약에 명기된 내용과 최고 재판소의 판결이 부딪히자 일본이 국제법을 언급하며 보복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윤 전 원장은 또 일본의 중재위 구성 제안을 거부한 우리 정부 입장에 찬성했다. 그는 "대법원의 판결의 결정적 요인은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위자료 청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 문제가 중재위에 갔을 때의 쟁점은 '식민지배가 합법이냐, 불법이냐'인데 논쟁에서 지게 된다면 국제 사회에 대해 식민 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장을 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윤 전 원장은 또 WTO 제소 조치에도 긍정적인 태도였다. 그는 "WTO의 역할이 위축돼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일본 정부의 부당한 경제보복을 국제사회에 공론화하기엔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전 장관은 "국내법은 상식에서 벗어나선 안 되고, 대외법은 국제법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며 "이번 판결로 인한 사태를 보면 각 나라의 대법원은 국가를 초월하는 존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런 식의 상황이 이어지면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와 협상이나 조약을 맺으려고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빠른 갈등 해결을 위해 윤 전 장관은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을 통해 채널을 만들 것"을 조언했다. 그는 이낙연 총리 특사, 양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외교적 해결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윤 전 장관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도 손해다. 빨리 해결하기 위한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전 원장 역시 "(갈등이) 장기화할수록 국민 경제와 기업에 미칠 영향이 크다"며 우리 기업이 구상권으로 대신 보상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1965년 일본으로부터 청구권자금을 개인을 대신해 국가가 받은 이상 국가가 책임지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특별법을 통해 정부와 함께 청구권 자금으로 혜택을 본 우리 기업들도 참여하는 재단을 조성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보상하는 방안 등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주현지기자 jhj@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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