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 미흡
환경부 서기관, 기업과 유착 확인
조직적 증거 인멸 정황도 포착
1차수사 피한 관련자 대거 포함
무려 1421명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생 8년 만에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책임자 34명을 추가 기소했다.
이에 2016년 첫 사법처리 당시 처벌을 피했던 관련자들이 대거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23일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 홍지호(68) 전 대표 등 8명을 구속기소했다. 또 정부 내부 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44) 씨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특히 SK케미칼 홍 전 대표 등 4명, 애경산업 안용찬(60) 전 대표 등 5명, 필러물산 김모(57) 전 대표 등 2명, 이마트 전직 임원 2명, GS리테일 전 팀장 1명, 퓨엔코 전직 임원 2명 등 총 16명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다.
검찰의 이번 수사로 6500명에 달하는 피해자와 가족들이 억울함을 덜게 됐다.
죽음의 분무를 뿌린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11월 세계 최초로 개발돼 상용제품이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판매됐다. 편리함 때문에 제품은 큰 인기를 끌었고 판매가 금지된 2011년까지 980만통이 팔려나갔다.
죽음의 분무의 유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지만 전문적인 확증이 없어 제대로 처리가 늦어졌다. 이날 현재 정부에 등록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이달 19일 기준으로 6476명이다. 이 중 1421명이 사망했다.
이번 검찰 수사는 2013년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를 재판에 넘기고서 6년 만에 재개한 것이다.
2013년 당시 수사에서는 학술 연구 결과도 부족했고, 이번 재조사에 드러났듯 증거인멸 등으로 많은 책임자들이 수사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 재수사에서 검찰은 최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수사의 중점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원료를 이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이었다.
CMIT·MIT는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인 '유공 가습기 메이트'에 포함된 물질이다. '가습기 메이트'는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련 기업들이 작년 말까지 수사와 이에 따른 법적 처분을 피해왔다. CMIT·MIT 원료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의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고, 환경부가 뒤늦게 관련 연구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지난해 11월 수사가 재개됐다.
검찰은 첫 개발에 성공한 유공이 제품의 유해성과 관련해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의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통보 받고서도 최종보고서(1995년 7월 발간)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1994년 11월 상용 제품을 출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공에게 2000년 가습기 살균제 사업을 인한 SK케미칼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울대 연구 보고서 등을 무시했다. 2002년부터는 여기에 애경산업이 가세했다.
특히 검찰은 이번 재수사에서 환경부 서기관 최씨가 2017~2019년 애경산업으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 등을 제공받고 국정감사 자료와 가습기 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보고서 등 각종 내부 자료를 건낸 사실도 확인했다. 최 씨는 2018년 11월 애경산업 직원에게 검찰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이니 수사에 대비해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들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받는다.
황병서기자 BShw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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