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칼럼] 국민 통합돼야 나라 흔들리지 않는다

메뉴열기 검색열기

[양승함 칼럼] 국민 통합돼야 나라 흔들리지 않는다

   
입력 2019-08-19 18:21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근래 보기 드문 이상적 국가비전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 일본과의 경제전쟁 돌입으로 이번 축사에서 대통령이 한일관계에 관하여 어떠한 말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건설을 외친 대통령의 연설은 단순한 반일 감정을 넘어 극일(克日)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납북된 좌파시인 김기림의 '새나라송(頌)'에서 경축사의 화두를 찾은 문 대통령은 이어서 국가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위기상황을 극복할 의지를 표출했다. 자유무역 경제강국, 협력번영 교량국가, 남북 평화경제통일의 세 가지 국가목표 또한 국민의 위기의식에 한 가닥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반일 감정에 편승하여 국민적 지지 결집효과만을 노리는 상징조작의 차원을 넘어서는 품격을 보여 주었다. 최근 주변 국가들로부터 끈임없이 날라오는 도전과 압력, 심지어 조롱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굳건히 일어설 수 있는 새로운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바로 여기까지라는 점이다. 국가의 비전과 목표는 지향해야 할 이상과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라면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이 있어야 비로소 현실적으로 목표 달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비전과 목표가 이상이라면 전략과 전술은 현실이다. 따라서 이상이 없는 현실은 희망이 없고 현실을 무시한 이상은 환상에 불과하다. 흔히 정책부재라는 혹평을 받는 한국의 국정운영을 보면 일반론만 있지 구체적 각론이 결여되어 있다. 즉 규범적 당위론만 전개하였지 실제 전문성이 부족하여 탁상공론에 그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아왔다.

김기림은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 나라의 심장에/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이고 철판을 펴자/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가자"라고 광복의 벅찬 희망을 현실참여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짧은 시에 국가 비전 목표 전략이 모두 포함되어 당장 강건한 국가가 세워질 듯하다.

문 대통령의 경축사는 27분이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없고 축사는 짧아야 한다는 주장은 관료주의적 발상이다. 정당 대표들의 연설도 1시간 넘기 일쑤인데 이번 같이 중차대한 시기에 대통령의 연설이 길다하여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정책적 제안이 함께 이뤄졌었다면 국가 비전과 목표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희망이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사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국민통합이다. 국민의 정체성이 하나로 통합 단결되면 될수록 그 나라는 어떠한 외세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물론 힘이 없으면 강압적으로 굴복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국력 건설도 중요하다. 그러나 강국도 국민이 분열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도자와 국민이 합심하여 강국을 건설해야만 비로소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진다. 조선 말기의 친일 분열세력의 등장과 국력 쇄진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현재는 중강국으로서 증강된 국력을 갖추었지만 국민통합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 과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과거 정권의 운명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통합의 과제는 정부와 여야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엄중한 시기에 정치지도자들이 국가이익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고 국민을 선도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국민이 선도하고 있다. 자칫 혐일 감정으로 비화될 수 있는 상황을 'NO아베' 등으로 대상을 일본 전체보다는 아베정권으로 제한하고 있고 대응전략을 문화운동으로 승화시켜 감정악화를 자제하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이 국가이익을 저버리고 당리당략에만 집착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의 국가위기는 정치지도자들이 거듭나면 날수록 훨씬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일본의 우경세력은 한국 길들이기 전략을 오래 전에 세웠고, 북한은 대남용 단거리미사일 쏘아대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안보를 뉴욕아파트 월세에 비교하고, 중러는 합동훈련에서 영공을 침입 도발하는 가운데 경제침체는 지속되는 사면초가의 위기상황에서도 국가이익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 정치지도자들은 이성적 비판과 합리적 대안 제시로 새 나라를 건설하는데 국민과 함께 동참할 수는 없는 것인가?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