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원 전자통신연구원 품질혁신센터장
![[기고] 한국의 `가우스`를 꿈꾼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08/2019082302102369607001[1].jpg?var=1159 "[기고] 한국의 `가우스`를 꿈꾼다")
가우스가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것을 두고 혹자는 타인의 인정보다는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을 것이라고도 하고, 그의 이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논쟁을 싫어해서였을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연구 성과는 양으로나 질로나 보통의 연구를 뛰어넘는 수준이었으니, 논문발표(publish or perish)가 지상 과제였던 대학원 시절에도 한 해에 잘해야 한 편의 평범한(?) 논문을 근근이 발표하던 나로서는 그의 'few'와 'ripe' 모두 부러울 뿐이다.
1970년대 이후 우리 과학계는 실로 엄청난 성공을 경험해왔다. 하나 하나의 작은 성공은 기술 혹은 연구 자체로서의 성과뿐 아니라 우리 산업계에 '기술이전'의 형태로도 확산되었다. 필자가 속한 연구원만 하더라도 전전자 교환기와 반도체, 한국형 주전산기, CDMA 상용화, WiBro 개발 등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겨왔다. 이런 성공 신화는 아직도 우리 선배들의 무용담 속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연구원에서 개발한 기술과 그 기술을 이용한 제품이 생산에 연결되기까지는 기술적·시간적 간격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 연구원은 연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들의 관리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관리 방식은 우리 연구원만의 품질관리 시스템인 '큐마크'(Q-mark)로 제도화 되었다.
2008년 시작된 큐마크는 연구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다. 기술이전을 하고자 하는 모든 연구과제는 큐마크 인증의 대상이 된다. 학술 커뮤니티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검증방식인 동료 검토(Peer-review)를 통해 연구산출물의 기술적 요구사항을 검증하고, 검증된 요구사항 대비 연구결과물의 완성도를 단위기능별로, 그리고 시스템 차원으로 시험하며, 연구과제 수행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검증 절차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큐마크 인증을 획득한 연구과제는 국제적인 프로세스 수행능력 평가표준이자 인증인 스파이스(SPICE)의 1레벨(프로세스 수행), 2레벨(수행내용의 계획·추적, 결과물 관리), 그리고 3레벨(구체적인 표준 프로세스 존재 및 개선)까지 보장받게 된다. 어찌 보면, 품질과 창의적 연구활동은 상충하는 개념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렇기에 큐마크 시행 초기에는 많은 연구원들이 연구에 있어 품질관리의 '효과'와 지속성에 대한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큐마크 제도가 정착되면서 기술이전 기업들의 만족도는 물론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의 만족도 또한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노력은 2015년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으로부터 소프트웨어 자산뱅크 등록대상 R&D 과제에 대한 품질관리 면제를 통해 인정받았다. 품질관리 면제는 국내 49개 기관 중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기관 고유의 품질 프로세스로 NIPA의 품질관리를 대신하는 기관은 없다.
최근 연구원은 '인공지능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국가 지능화 종합연구기관'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약에 앞서 연구성과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걸음도 준비 중이다. 기술개발 중심의 품질관리에 창의적 연구과제 수행에 적합한 품질 프로세스를 더하고, 연구품질 제고를 위한 컨설팅 확대를 통해 우수한 연구 결과물을 위한 그간의 노력이 우리의 연구문화로 완전히 자리잡게 하기 위함이다.
가우스의 일기에 따르면 그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을 때 "마침내 성공했다"(Felicitas novis est facta), 혹은 "거인을 쓰러뜨렸다"(Vicimus Gegan)고 썼다고 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 우리 스스로 만족하는 연구성과물을 위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밤늦도록 불 켜진 연구실에서 또 다른 "거인을 쓰러뜨렸다"라고 쓰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적을지라도 성숙한 성과를 만들어낸 또 하나의 무용담을 훗날 후배에게 들려줄 날이 오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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