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칼럼] 위협받는 한국의 `데이터 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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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배 칼럼] 위협받는 한국의 `데이터 주권`

   
입력 2019-09-04 18:20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최근 한일갈등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나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등으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경제와 안보가 연계되는 국제정치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한일관계만이 아니라 미·중·일·러의 주변4망(網) 네트워크 속에서 봐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한일갈등의 이면에는 '미국 변수'가 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결정과정에 미국이 얼마만큼 연관됐냐는 문제를 떠나서 기술안보를 내세워 첨단산업 분야의 수출입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은 미국이 원조다.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미국은 화웨이 통신장비 제품의 사이버 안보 문제를 내세워 중국에 대해 경제적·외교적으로 다방면의 압박을 가해왔다. 화웨이 사태를 보며 미중 기술패권 경쟁을 논하게 되는 대목이다.
지난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무게 중심이 '화웨이'에서 '데이터'로 옮겨갈 조짐을 보여줬다. 사실 사이버 안보 논란으로 불거진 화웨이 사태의 이면에는 데이터 안보 문제가 있다. 미국이 우려하는 바는 화웨이 제품의 백도어를 통해 유출될 정보와 데이터가 야기할 국가안보의 문제이다. 중국도 미국의 공세에 맞서 자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규제 논리로 데이터 주권을 내세워 왔다. G20에서 일본이 제안한 '오사카 트랙'은 중국의 디지털 보호주의와 데이터 현지화 정책을 겨냥한 미국 등 서방 진영의 속내를 담고 있다. 화웨이 문제에서는 안보를 빌미로 보호무역의 칼날을 휘둘렀던 미국이지만 데이터 유통에서는 초국적으로 자유로운 흐름이 보장되는 무역환경을 옹호하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최근 화웨이 사태는 단순한 기술 선택의 문제가 아닌 동맹외교의 문제로 한국에 다가왔다. 지난 6월 주한 미국대사가 직접 나서 한국이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동참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데이터의 초국적 이동 문제도 향후 한미관계를 긴장시킬 가능성이 있다.

2016년 한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구글이 요청한 1:5000 축적의 국내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에는 국회에서 구글·아마존 등 미국 IT기업들에게 국내에 데이터센터용 서버를 설치할 의무를 지우는 법안이 발의되자 주한 미국대사가 "클라우드의 장점을 가로막는 데이터 현지화 조치를 피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데이터 생산량을 자랑하는 '데이터 선진국'이지만 국내 클라우드 시장의 약 70%를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과 같은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 데이터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구글은 내년 초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한다고 밝혔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벌써 제3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오라클은 지난 5월 데이터센터를 개소한 데에 이어 1년 내에 추가로 데이터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AWS와 IBM은 이미 2016년 일찌감치 국내 데이터센터를 차려놓고 클라우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클라우드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미국 클라우드 기업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인해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데이터가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국내에서도 데이터 주권에 관심이 부쩍 커졌다. 일례로 최근 중소기업벤처부는 데이터 주권론에 기대어 자국 기업이 주도하는 데이터 기반시설 구축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단 이러한 행보를 반기면서도 너무 단순한 데이터 주권론으로 흐르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데이터 주권을 내세우더라도 중국의 경우처럼 국가가 나서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접근은 시대착오적이다.

우리의 데이터 주권론이 '오사카 트랙'으로 대변되는, 미국 등 서방 진영의 자유로운 데이터 유통 담론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미중경쟁의 전선이 데이터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불똥은 언제 어떻게 한미관계 또는 한일관계로 튈지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중경쟁이 복잡한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만큼, 그 사이에 낀 우리의 고민도 점점 더 깊어져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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