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조국사태가 터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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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조국사태가 터져 다행이다"

김광태 기자   ktkim@
입력 2019-09-09 18:25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지금도 숨이 턱턱 막힌다. 상류층의 명문 의대 진학을 향한 처절한 욕망을 블랙코미디로 풍자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SKY 캐슬'. 한서진(염정아)은 딸 예서(김혜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근데 예서야. 엄마, 니 인생 절대로 포기 못 해."


오직 자기 자식의 성공만을 위해서라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 것 같은 그 용렬함이 오싹할 정도였다. 재력과 인맥과 학맥으로 연결된, 상류사회 그들만의 견고한 카르텔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올해 비지상파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SKY 캐슬'을 집필한 유현미 작가가 지난 5일 한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드라마 탄생 비화 한 토막을 들려줬다. "입시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시청자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고픈 부모의 욕망은 그 어떤 욕망보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아주 생생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유 작가는 아들이 고3이었을 때 '입시 컨설턴트'의 존재를 알았다고 했다. 그들이 짜주는 계획에 따라 몇 년 전부터 대학입시를 준비해온 학부모가 많다는 사실도 알았다. 충격을 받았단다. 아마도, 그 때의 절실함이 드라마 속에 생생히 녹아들었을 터다.

한국에 'SKY 캐슬'이 있다면 미국엔 'IVY 캐슬'이 있다. 꽤나 실력 위주로 작동돼 왔다던 미국 사회가 상상을 초월한 사상 최대의 입시 부정사건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김주영 같은 '똘똘한' 입시 브로커에게 돈만 갖다 바치면 아이비 리그 입성은 따논 당상이었다. 스탠퍼드, 예일, UCLA 등 유수의 명문대들이 구설수에 올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편법과 부정이 오간 그 은밀함의 세계가 노출되자 그 부정이 가능해진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맹렬한 논쟁도 일고 있다.

2011년부터 지난 2월까지 약 8년 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자녀를 진학시킨 사람 중엔 내로라하는 할리우드 배우와 금융사 최고경영자 등 수십 명이 끼어 있었다. 그들이 쓴 뒷돈만 해도 지금까지 총 280억원으로 알려졌다. 그 중 한 건의 부정입학에 650만 달러, 우리 돈으로 75억7000만원이라는 초고액 뇌물이 동원된 사례도 있었다.



입시 비리 수법도 다양했다. 명문대 출신의 '시험 달인'이 한 번에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받고 대입시험을 대신 치렀다. 운동부가 없는 고등학교 출신 학생은 학교 대표 선수 경력으로 둔갑해 부정 합격하기도 했다. 연방 법부무는 대입비리와 관련된 브로커와, 대학 운동부 코치 13명, 학부모 33명 등 50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그중 미국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주인공 펠리시티 허프만도 있었다. 시트콤 '풀하우스'의 로리 로플린은 두 딸을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조정부 특기생으로 입학시키기 위해 50만 달러를 뇌물로 주기도 했다.
학부모의 욕망을 이용한 대학의 학위장사 또한 은밀했다. 대학은 VIP 학생들을 따로 관리했다. 학생 파일에는 '이미 200만 달러 기부', '100만 달러 기부 약정' 등으로 각종 기부 내역을 정리했다. 심지어 '아버지가 외과의사'라는 설명도 붙여놓았다니 그 치밀함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허물어진 공정성 때문에 미국이나 한국 젊은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다양한 듯, 투명한 듯 보이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은 폐쇄적으로 변해버렸다. 사라져버린 공정성에 대한 상실감이 좌절감을 더 깊게 만든다. 고3 자녀를 둔 어느 지인은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어떻게 부와 권력을 되물림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조국 법무부장관이 수많은 의혹 속에서 결국 임명됐다. 어쩌면 '조국사태'가 터져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조 장관 딸의 일로 인해 우리 사회를 뒤돌아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공정함이란 어디로 사라졌을까. 평균적인 상식과 정의는 어디로 갔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있는 20대 '흙수저'의 열패감을 이해할 수 있을까.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김광태 글로벌뉴스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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