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정경부장
![[박선호 칼럼] 참을 수 없는 ‘조국스러움’](http://contents.dt.co.kr/images/201909/2019093002102269058001[1].jpg?var=1051 "[박선호 칼럼] 참을 수 없는 ‘조국스러움’")
본래 조 장관의 행태를 형용할 다른 말을 찾지 못해 나왔는데 이제는 범용되고 있다. 한동안 인기를 끌 전망이다. 원조 '조국스러움'이 갈수록 진화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표적인 예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을 위해 탄원서를 쓴 조 장관의 답변이다. 지난 2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문에서 나왔다. 조 장관이 과거 서울대 교수였던 2011년 당시 구속 수사를 받던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보석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한 손에 든 채 권 의원이 물었다.
"태광 재벌은 그토록 지탄받는 '비리 재벌'이다. 왜 '비리 재벌'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느냐?" 재벌에 대한 조 장관의 글을 봤던 이라면 모두 고개를 갸웃거릴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작 조 장관은 당당했다. 답도 단순명료했다. "유학시절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을 받았기에 인간적 도리를 한 것이다." 맞다, 인간적 고마움을 표시는 해야 한다. 하지만 본래 그게 힘든 법이다. 그래서 상식적인 사람은 보통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한다. 재벌 돈을 받지 않든지, 돈을 받았고 탄원서도 쓸거면 재벌 욕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든지.
본래 우리 사회는 이성적 정의와 정서적 정의가 혼합된 '트롤리 딜레마'로 가득 차 있다. 간단히 '강물에 빠진 지인 한 명을 구할 것인가? 낯선 가족 다섯명을 구할 것인가?'의 질문이다. '조국스러움'은 이 트롤리 딜레마의 양극단을 오가며 때론 이성적 정의를, 때론 정서적 정의를 부르짖는 게 특징이다. 자택 압수수색 지휘 검사와 통화는 '조국스러움'의 절정이다. "법무부 장관으로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는 지적에 조 장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답한다. "몸과 마음에 지친 아내가 '119를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전화를 해왔다. 그래서 검사와 통화를 해 '처의 상태가 안 좋으니까 (압수수색을) 좀 차분히 해달라고, 배려해달라고 부탁했다."
'법무부 장관의 부당한 행위'라는 이성적 정의가 '남편으로 그럴수도 있지…'하는 정서적 정의와 비교돼 희석된다. 하지만 압수수색을 하는 현장지휘 검사에게 역대 누가 "아내를 배려해 달라"고 전화를 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 수사에서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조 장관의 변명은 역시 '인간적 도리'다. 부적절했지만 아내를 걱정하는 남편으로서 당연한 도리였다는 것이다. 다시 평범한 이들만 바보가 됐다. 이 '조국스러움' 증세는 전염성이 강해 우려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를 주문했다. 조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맞는 말이지만 틀렸다. 시의(時宜)가 틀렸다. 이 순간 오직 '조국만을 위한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 순간 문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가슴 아파할 이들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 지시로 일부 대법원 판결까지 무죄가 난 사건들이 재수사를 받았다. 새로 검찰 조사까지 받고 재판까지 받아야 했다. 그 결과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시끄럽더니 결국 쥐새끼 한마리)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자신의 말 한마디로 고통을 받았을 이들의 인권을 생각했을까. 오죽했으면 최순실씨가 "조국 딸과 내 딸이 뭐가 다르냐?"고 한마디 했을까.
문 대통령은 또 조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에 "법률문제는 없다"며 학생부종합전형 대입제도 개선을 지시했다. 교육부는 이제 학종 개선을 위한 실태 조사에 나서겠다고 한다. 상식을 가진 많은 이들이 묻는다. "왜 조국 때문에 대학입시제도가 바뀌어야 하는가?", "왜 검찰 개혁은 조국 때문에, 조국에 의해서만 이뤄져야 하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조국스러움'을 참아야 하는가.
박선호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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