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학길 칼럼] 경제위기 뇌관 되어가는 `조국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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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학길 칼럼] 경제위기 뇌관 되어가는 `조국사태`

   
입력 2019-10-09 18:28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1997년 11월말 한국 정부가 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함으로써 시작된 외환금융위기는 3년이 지난 후 IMF의 독립평가국에서 '쌍둥이 위기'(twin crisis)로 정의된 바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대규모 부도사태가 국내 은행들의 부실로 이어졌던 '국내금융위기'와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지급보증한 외자상환을 못하게 된 데 따른 '외환위기'가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 말 IMF 사태의 배경에는 정치 위기의 엄습이 자리잡고 있었다. 경제 위기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선 위기사태를 '촉발'(trigger)하는 진정한 원인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이러한 소위 지표이론에서는 수출의 급감, 외화보유고의 소진, 대외부채의 급증, 경제성장률의 급락, 소비와 투자의 급감 등 여러가지 경제지표를 이용하여 경제위기의 가능성을 예측한다. 다만, 1997년 한국의 IMF 위기에서는 정부는 물론 IMF 등의 국제금융기관에서도 한국 경제의 '기본적 경제여건'(economic fundamentals)은 위기촉발 수준까지 나빠지지는 않았다고 보고 있다.
필자는 안식년을 받아 1997년말 IMF 사태가 촉발될 당시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SAIS)에서 국제무역론 강의를 하고 있었다. 한국이 금융위기에 노출되고 있다는 소식을 나에게 처음 전해준 분은 당시 미국은행가협회의 회장으로 있던 분이었다. 그 분은 회원은행들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이 한달 이내로 최소한 300억 달러 정도의 현금유동성이 필요한 것 같은데 한국 정부는 이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12월초 서울에 잠깐 귀국하여 당시 재무부 고위관료로 있던 친구에게 문의해 본 결과 그러한 소문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렇게 1997년 한국의 금융·외환 위기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경제를 엄습하였던 것이다.

회고해보건대, 한국의 IMF 사태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국내 정치의 위기사태로 시작되었다고 판단된다. 당시 소문이 나기로는 국내에 주재하던 외국금융기관들이 한국의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에게 대출 또는 보증해준 외화 단기부채를 갑자기 회수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일본 은행들의 서울지점에서 가장 먼저 대출회수, 기간연장 불허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미국·유럽 금융기관들은 일본 은행들이 한국의 경제 사정에 가장 정통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자동적으로 일본은행들을 따라서 여신회수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일본 은행들이 회수에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1997년 10~11월)에 한국에는 정치 위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여당이 사실상 분열사태를 맞이하고 있었고 야당 대표인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12월 중순에 있을 대선에서 당선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하면 한국의 주요 기업이나 은행들이 국유화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외국금융기관 간에도 회자되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 은행의 입장은 일단 단기여신을 회수하고 6개월이나 1년을 기다려보자는 것이었고, 미국·유럽의 금융기관들도 일본 은행들의 전략을 따라갔던 것이다. 이렇게 1997년 금융위기를 복기하듯 회고해보는 이유는 현 상황이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지난 1일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9월)'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기대비 -0.4%로 사상 처음 마이너스(-)로 공식 집계됐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디플레이션(장기적인 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에 진입하는 징후가 노골화되고 있다. 디플레이션 진입과 같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정책은 정치위기를 자초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조국 법무장관 사태'로 야기되고 있는 국내 정치위기는 최악 경제위기의 뇌관이 되어가고 있다.

마침 삼성전자가 중국의 화웨이를 제치고 일본의 KDDI에 2조4000억원 규모의 5G 장비를 보급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부도 일본 재계의 선의에 화답하는 파격적인 국제정치의 안정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의 권고도 있는 만큼 이를 받아들여 지소미아의 유효기간이 살아있는 동안 재연장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결정은 국내 정치의 안정화와 경제위기의 수습에도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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