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82년생 김지영`과 째째한 남자들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1602102269660001[1].jpg?var=3230 "`82년생 김지영`과 째째한 남자들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최근 영화 '82년생 김지영' 측이 공식 홍보 일정에 돌입해 인터넷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 작품은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2016년 출간 이후 2년 만에 100만 부를 돌파했고, 일본과 대만 등에서도 호평 받고 있다. 1982년에 태어난 여성 김지영의 삶을 그리며 여성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겪는 차별을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여기에 수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면서, 미투운동과 함께 페미니즘 운동을 견인한 사회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페미니즘 물결에 반발하는 남성들이 '82년생 김지영'을 타격점으로 설정해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그 소설의 영화판이 개봉을 앞두고 홍보를 개시하면서 논란이 커지는 것이다. 한 포털에선 개봉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0점과 10점의 평점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반대 세력은 보지도 않고 0점 테러를 가하고, 지지 세력은 그에 맞서 무조건 10점을 주며 응전한다. 자연스럽게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발언도 이어진다.
특히 '82년생 김지영'과 관계된 여성 연예인들이 반발세력의 집중 표적이다. 배우 서지혜가 SNS에 이 책 사진을 올리며 '책 펼치기 성공'이라고 했다. 책을 다 읽었다는 것도 아니고, 책의 내용에 공감한다고 한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 동조 주장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책을 펼치는 데에 성공했다는 말을 올렸을 뿐인데 이게 문제가 됐다. 서지혜가 '폐미코인을 탔다'며 '몰랐든, 실수든, 의도였든 (페미니스트) 박제 당했다. 팔로우 끊고 간다', '남성 팬에게 인기 얻고 돈 벌었으면서 페미짓한다'는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여기에 김옥빈이 '자유롭게 읽을 자유, 누가 검열하는가'라고 서지혜를 응원했다가 김옥빈도 표적이 됐다.
평양공연에 참가하면서 누리꾼들의 사랑을 받았던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도 이 책을 읽었다는 인증을 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소녀시대 수영은 방송에서 이 책에 대해 한 마디한 죄로 공격당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정유미도,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바로 공격대상이 됐다. 그야말로 이 책에 '스치기만 해도' 매장할 듯이 달려드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은 안전지대에 있다. 공유도 정유미와 함께 '82년생 김지영'에 캐스팅됐지만 공유를 향한 비난은 없었다. 방탄소년단의 RM은 "시사하는 바가 남달라 인상 깊었다"면서 이 책을 언급한 바 있다. 유재석, 김국진, 노홍철도 이 책을 읽었다고 했다. 고 노회찬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까지 했다. 최근엔 유아인이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추천한다고 했다. 이들 모두 별다른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
오직 여성만 문제다.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일부 남성 누리꾼들이 이 책과 관련된 여성들만을 공격하는 것이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 여성도 뒷담화 대상이 된다. 예컨대 한 남성 누리꾼이 커뮤니티에 "내 썸녀가 SNS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글을 올렸다. 손절(헤어짐)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냐?"고 쓰자, "읽었으면 손절"이라는 식의 답글이 이어졌다.
두 개의 반발이 겹쳤다. 첫째는 페미니즘 운동과 그의 상징격인 이 책에 대한 반발이고, 둘째는 목소리가 커진 여성에 대한 반발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반발로, '건방지다'고 여겨지는 여성을 응징한다는 움직임이 인터넷에서 아주 크게 나타난다.
과거에 한 여대생이 예능에서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말했다가 엄청난 집단공격을 당했다. 그 여대생의 신상이 털리고 학교 학과 사무실에까지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남성들도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고 비하하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런 건 공격대상이 되지 않았는데, 여성이 '감히' 남성의 외모를 평가하자 수많은 남성들이 공분 궐기해 흉악범 사례보다도 더 강하게 사회적 처벌을 가했다. 그밖에도 여성이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바로 '00녀'라고 이름 붙여 온라인 조리돌림을 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성들의 기를 죽여 고분고분하게 만들려는 측면도 있고, 도마 위에 올려놓고 품평하고 조롱할 할만한 대상이 여성이라는 심리도 있다. 이런 사회심리가 있는 가운데 '82년생 김지영'이 페미니즘 열풍의 중심이 되자, 이 책 관련 여성을 매장시켜 여성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각성은 필연이고 역사의 큰 흐름이다. 인터넷 조리돌림으로 막을 수준이 아니다. 그걸 당랑거철의 형국으로 막으려 하니 무의미한 파열음만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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