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멧돼지와 아프리카돼지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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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칼럼] 멧돼지와 아프리카돼지열병

   
입력 2019-10-24 18:33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야생 멧돼지의 반란이 또 시작됐다. 산에서 살아야 할 멧돼지들이 도심에 출몰해서 주민들을 놀라게 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12월의 짝짓기 철을 앞두고 멧돼지의 먹이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생기는 일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9월부터 시작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퍼뜨리는 주범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이제는 멧돼지를 모두 포획하거나 사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멧돼지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출몰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무렵부터였다. 최근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도시가 멧돼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야산에 서식하는 멧돼지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탓이다. 전국에 대략 35만 마리의 멧돼지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멧돼지의 입장에서는 야산에서 찾을 수 있는 도토리·풀뿌리나 토끼·들쥐만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멧돼지의 개체수가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반세기 전의 민둥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1965년부터 42만 명의 화전민을 정착시키고, 산림계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추진한 조림사업 덕분이다. 그런데 조림 사업의 성공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멧돼지·고라니·꿩 등을 '유해조수'로 지정해서 관리해야 하는 형편이 됐다.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인간이 만들어낸 질병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야생 진드기와 돼지와 평화롭게 살아가던 바이러스가 생태계를 통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돼지 종을 만나면서 나타난 감염성 가축질병이다. 20세기 초에는 아프리카에서만 발생하던 토착 가축질병이었다. 그러나 1960년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심각한 골칫거리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돈 산업이 확장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치사율이 100%에 가까운 ASF는 '돼지 흑사병'으로도 알려져 있다. ASF를 치료하는 치료제나 예방하는 백신도 없다. 돌연변이를 통한 바이러스의 끊임없는 진화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ASF가 발생한 지역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하는 잔인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ASF는 걷잡을 수 없는 확산된다. 사육하는 집돼지만 단속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야생 멧돼지와 진드기의 차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제로 2018년 8월 압록강과 인접한 랴오닝성에서 처음 발생한 중국의 경우가 그렇다. 돼지는 물론 돼지 가공품의 이동까지 금지시켰지만 속수무책이었다. 2018년 말에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올 4월에는 캄보디아·라오스를 비롯한 동남아시아까지 확산되었다. 북한에서도 ASF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도 ASF의 유입을 막기 위해 노력을 했다. 중국산 돼지 가공품의 수입을 차단하고, 양돈 농가에서 잔반의 사료 활용을 금지시켰다. 그런데도 9월 20일 파주에서 ASF가 발생하고 말았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확산 속도가 비교적 느린 편이다. 20만 마리에 가까운 사육 돼지를 살처분해버린 농축식품부의 방역 대책 덕분일 수도 있다.

그런데 10월 16일부터 민통선 안쪽에서 발견된 멧돼지 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되었고, 20일에는 민통선 남쪽에서도 감염된 폐사체가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작년부터 북한의 멧돼지나 진드기를 통한 바이러스의 유입 가능성을 걱정해왔다. 생태학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민통선에 효과적인 차단 대책을 마련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환경보존에만 집착하는 환경부와 3중 철책망을 너무 신뢰하는 국방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야생 멧돼지의 포획과 사살이 시작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과연 멧돼지와 진드기를 통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양돈 농가에 대한 방역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양돈농가와 주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어설픈 대응은 화를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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