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남북 스포츠교류, 화약고 되다

메뉴열기 검색열기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남북 스포츠교류, 화약고 되다

   
입력 2019-10-29 18:13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화해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때, 화해 분위기부터 조성하기 위해 선택하는 것 중의 하나가 스포츠 교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여하고 한국이 환대했던 것이 그 이후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중국과 가까워질 땐 탁구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 올림픽을 주창한 명분이 세계화합이었다. 국제 운동경기를 통해 세계 청년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우정을 다질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쿠베르탱은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회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닌 얼마나 잘 싸우는 것이냐다"라고 하면서, 승패가 아닌 참여와 페어플레이를 통한 우호증진이 경기의 목표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 북한의 축구 월드컵 평양 예선전 이후, 우호증진은 커녕 북한에 대한 공분이 들끓었다. '미사일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민심이 축구에 무너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사일 발사 때보다 더 북한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졌다. 젊은 누리꾼들 사이에선 남북 교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운동경기가 화합의 계기가 아닌, 대립을 초래하는 화약고가 된 것이다.

이는 북한이 너무나 황당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명색이 월드컵 예선인데 북한의 비협조로 생중계가 불발됐다. 녹화영상을 준다더니 HD방송이 불가능할 정도로 저급한 화질의 영상을 넘겨서 빈축을 샀다. 실시간 경기 내용을 말레이시아에 있는 아시아 축구 연맹을 거친 문자 중계로 전해 받아 21세기에 봉화를 전달하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 선수들이 경기 중에 보였다는 거친 태도도 문제였다. 남한 우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스포츠맨 정신에 입각한 페어플레이는 보여줬어야 했다. 하지만 북한 선수들은 우리 선수들이 부상을 염려할 정도로 공격적으로 달려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우리 국민의 적대 감정이 치솟았다.



황당함의 극치는 무관중 사태였다. 일반 관중이 불허된 텅 빈 경기장에서 월드컵 예선을 치른 것이다. 이 비현실적인 풍경이 북한에 대한 이질감을 극대화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적대적 태도도 문제다. 그동안 남북 문화스포츠 교류를 하면 북한 관계자들이 남한 측에게 나름 동포를 향한 환대를 보여주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우리 선수들에게 북측 인사들이 아주 적대적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적대감에 불을 질렀다.
스포츠 교류가 이렇게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건 북한체제의 특이함 때문이다. 쿠베르탱은 승리가 아닌 참가하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만 북한은 그런 생각이 아니다.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고, 특히 남한에겐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여긴다. 지면 체제경쟁에서 지는 것이고 수령의 망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체제 과시를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체제의 공통점이다. 나치 독일부터 시작해 독재국가들이 이런 특성을 보여 왔는데 북한이 가장 극단적이다.

북한은 남한에 대한 열패감이 크기 때문에 더욱 운동경기 하나라도 반드시 이기려고 한다. 북에 대한 열패감이 없는 우리는 운동경기 한 번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지만 북은 남한과의 경기에 결사적이다. 자신들이 경기력 우위에 있을 때는 여유를 보이겠지만 열세일 땐 이번처럼 무리수를 두게 된다. 무관중 경기도 남한에 참패하는 공개망신을 우려해 감행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공격적이고 황당한 북의 태도에 우리 국민의 반발이 이어질 것이다. 북한은 또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하지 못하는 전체주의 체제다. 우리 같으면 정치상황이 스포츠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최근 남북 경색 국면이 이번 남한 선수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이어졌을 것이다. 앞으로도 정치대립 의식이 스포츠 교류에 투사되면 우리 국민의 반발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이래서 섣부른 스포츠 교류가 남북을 더 대립하게 하는 화약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 나타난 우리 누리꾼들의 격앙된 반응이 심상치 않다. 무조건 교류하면 가까워질 것이란 낭만적인 기대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보다 조심스러운 기획으로 접근해야 한다. 요즘 분위기에선 북한과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종목은 평양 경기를 피하는 게 좋겠다. 국제대회의 경우 제3국 경기장 활용, 조 편성 단계에서의 분리 신청 같은 방법을 고려할 만하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