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칼럼] 돈 푸는 것이 실탄 낭비가 안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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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칼럼] 돈 푸는 것이 실탄 낭비가 안 되려면

   
입력 2019-10-30 18:26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IMF와 OECD가 우리나라의 금년 성장률 전망을 2.1, 2.0%로 낮추었고, 세계적 투자은행들 역시 1.8~1,9%로 수정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석 달 만에 또 내려서 역대 최저 수준인 1.25%로 돌아갔다.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적자 예산을 편성해 건설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투자만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은 모양이다.


돈을 더 풀면 우선 내수가 활성화되고, 그러면 투자가 늘어나서 일자리가 생기고, 젊은이들이 취직이 되면 결혼해서 집도 사고 자녀를 낳고 하면 내수가 더 늘어나 다시 투자를 촉발할 것이니, 경제의 확대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 금융 같은 거시경제 수단으로 일단 내수는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투자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다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내수에 의존하는 농업과 서비스산업의 경우 총체적으로 공급과잉 상태에 있어서, 기존 사업에서는 내수 증가가 현재의 공급능력을 크게 초과할 정도가 아니면 새로운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규제혁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케이블카도 못 놓고, 원격진료도, 웨어러블 의료기기도 안되고, 농업의 기업화도 스마트 팜의 등장도 요원하고, 공유경제도 안 되는 나라에서는 새로운 투자나 일자리 창출은 일어나기 어렵다. 고작 비의료인의 문신 영업 허용을 규제 개혁의 성과라고 내놓는 정도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인공지능(AI)에 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정부가 대학에 인공지능 인재 양성을 주문했지만, 교수요원 확보에 나선 대학들은 좋은 인재들은 이미 중국이 다 선점했고, 우리가 줄 수 있는 보수 수준으로는 이삭줍기조차 어렵다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12년째 대학등록금 동결의 귀결이다.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만 8명이 되는 일본 수준의 기초과학의 저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교육은 어려운 수학 과학 공부에서 아이들을 해방시켜 주고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관심사다.

제조업도 규제혁파가 없으면 투자가 일어나기 어렵다. 현대차가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서 5조짜리 합작회사를 만드는 데, 왜 본사를 미국 보스턴에 두기로 했겠는가? 드론이 전쟁에도 쓰이고, 사람을 실어 나르는 자율주행 드론 택시가 곧 등장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규제 때문에 드론 산업을 중국에 다 넘겨 주고 말았다.



모든 산업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문제다.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임금이 많이 오르는 것은 이미 취업해 있는 사람들에만 유리하지, 아직 취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것이다. 기취업자의 특권은 사용자에게서 쟁취한 것 같지만 동시에 미취업자의 기회를 박탈해 얻어진 것이다. 세계 최저 수준으로 평가되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그대로 두고서는 투자가 일어나기는 틀렸다는 것을 알고나 돈을 써야 할 것이다.
재정지출도 마찬가지다. 일자리 예산이라는 이름으로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버티고 준비하라는 취지의 사회복지성 예산을 늘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세금을 쓰기만 하고 새로운 세입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재정지출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의 짐만 될 뿐이다. 지속가능하고 스스로 벌어서 나라에 세금을 내는 그런 일자리가 생기게 하는 재정지출이라야 한다.IMF 총재는 사회기반시설과 연구개발투자를 언급했다. 그러지 않아도 정부는 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주기까지 하면서 SOC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타당성이 없는 경우 일자리 창출과 수요 진작 효과는 완공과 동시에 다시 사라진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재정지출을 늘린다면 차라리 민간이 하는 것을 막는 투자사업들을 정부가 직접 하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대형 병원을 몇 개 짓는다든가, 수출 농업을 가능케 할 최첨단 대규모 스마트 팜을 곳곳에 짓는다든가, 모든 국립공원 안에 알프스 수준으로 촘촘하게 산장과 케이블카 등 인프라 투자를 한다든가 하는 것이 확실하게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이다.

뭐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인 줄은 안다. 그래도 규제혁파와 노동개혁 없이는 금리를 내려도, 재정 지출을 늘려도 실탄 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을 명심하고, 제발 이번에는 큰 성과를 올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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