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AI 시대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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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인문학] AI 시대와 글쓰기

   
입력 2019-10-31 18:24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김종규 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미국 오바마 행정부 말기 백악관의 대통령실은 국가의 미래 전략과 관련된 몇 편의 정책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한 바 있다. 이른바 '백악관 보고서'라 불린 이 문건들에는 첨단 기술사회의 전개 속에서 미래 사회의 안정화를 위한 국가적 전략이 담겨 있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그 무렵, 이 보고서에 대한 우리의 관심 역시 매우 높았다.


이 가운데 첨단 기술의 발전과 노동의 관계를 다룬 문건은 향후 소비력 확보를 위해 미국 국민들이 노동시장 내에 지속적으로 머물 수 있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시 이같은 정책적 방안이 모색되어야만 했던 가장 위협적인 조건은 산업혁명 이후 고착되었던 인간노동과 기계노동 간의 경쟁구도에서, 기계노동이 장착하게 된 자율성(autonomy) 능력, 즉 AI 주도의 자동화(AI-driven Automation)였다.
이제는 익숙해 진 것이지만, 이 자율성의 핵심은 학습과 판단에 있어 인간의 개입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학습과 판단 자체가 인간의 지성이 아닌 기계적인 인공적 지능에 맡겨지는 것이다.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이라는 전문용어가 이제는 어느 정도 일반화된 용어로 회자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사회에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이 변화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용과 활용의 관점에서 이러한 혁신기술은 매우 유용하고 편리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여타의 기계 기술이 보여주었듯, 이 혁신기술은 수고롭게 수행해야 했던 일들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자유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가 아닐 수도 있다. 영상으로도 책으로도 표명된 '인간은 필요없다'는 경고는 사실 최근에서야 주장된 것도 아니었다.

기술을 그저 사용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조야한 사고일 뿐이다. 기술이 '사용의 도구'라는 사고를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전제는 인간이 기술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이 기술을 만든다는 사실 속에서 더욱 공고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과 기술은 그렇게 일방적인 관계만을 맺지 않는다. 더욱이 강한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모라벡의 역설'은 그 효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에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주장하며, 그 차이 속에서 평온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그 어떤 가능성도 논하기 어려울 듯하다.

노동을 표현하고 있는 여러 언어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듯, 그 행위가 인간이 역사적으로 수행해 온 가장 고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행위의 회피는 어쩌면 긍정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물론 심각하게 비판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이 정도의 생각을 받아들여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순간 우리가 심각히 자문해보아야만 할 것이 있다. 그러한 대체가 노동의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그러한 영향과 현상이 인간의 또 다른 활동에, 특히 인간의 본질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활동의 영역에도 벌어진다면 어찌 될 것인가?
얼마 전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기업인 'Open AI'가 'GPT-2'라는 프로그램의 공개와 진행을 중단한 바 있다. 이 인공지능의 핵심 기능은 텍스트를 자동으로 완성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간단한 하나의 문장을 실제 기사처럼 이 프로그램이 작성한다는 점이었다. 작성된 결과는 인간이 작성해 온 기사의 형식과 내용 등에 비교하여 별 차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내용이 허구였는데도 말이다. 'Open AI'가 'GPT-2'를 포기한 것은 이것이 심각한 가짜뉴스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가짜뉴스의 생산은 이 기업이 추구하는 공익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그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인공지능이 글쓰기를 못하는 것이 아닌, 안하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사태를 이미 목도해왔다. 인공지능이 탄생하기 전(前) 체스에서, 그리고 인공지능이 탄생하고 있던 와중(中)에 바둑에서 말이다. 인공지능의 은퇴는 한계에 기인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글쓰기라는 활동에서 인공지능의 개입을 목도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제 인공지능이 탄생한 후(後)를 대비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 글은 결코 단순한 수단이 아니었다.

문화(文化)라는 인간 고유의 개념이 보여주듯, 인간이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에 글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글이 인간 고유의 세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읽고 쓰는 과정이 인간의 사고구조의 변화 과정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읽는 것 속에서 인간은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존재할 수 있었으며, 바로 그러한 점에서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 조건이자 고유한 활동인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활동은 그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결코 회피되어서도 대체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글쓰기의 시도가 실제 글이 필요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효과성의 차원에서 시도되거나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공지능 탄생 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금 인간의 글쓰기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고민을 해야만 할 때다. 만일 글쓰기에도 노동의 영역에서 고착되었던 경쟁의 구도가 이전된다면,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 부분을 이루는 영역의 활동이 대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탄생 후의 시대는 실로 인간에게는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와 같은 시도가 이벤트처럼 번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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