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칼럼] 개도국지위 포기의 불가피성

메뉴열기 검색열기

[정인교 칼럼] 개도국지위 포기의 불가피성

   
입력 2019-10-31 18:24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지난주 우리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지위 포기 공식결정은 시의성과 내용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개도국지위 포기 시한이 시기적으로 자동차에 대한 232조 관세 부과 결정 시점과 맞물려 있고,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어느 개도국도 우리나라의 개도국지위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개도국 특혜를 누려 온 것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1995년 WTO 출범 시 관례에 따라 우리나라는 개도국으로 선언했다. 이듬해 선진국 클럽이라고 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다른 회원국들이 우리나라를 개도국으로 볼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농업의 특수성과 우리나라의 여건을 설명해 농업과 환경 분야에 한해 개도국인 것으로 합의했다. 우리나라의 개도국지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우리 농업당국은 개도국지위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애처로울 정도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필자는 많이 봐왔다.
1980년대 후반 우루과이라운드(UR) 당시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한 국가이다. 세계 12위 경제규모, 6위 수출액,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등 우리 경제의 실력으로 볼 때 개도국지위 포기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농업과 환경 분야에 한정했더라도 우리나라의 개도국지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이 컸고, 개도국이라고 우기기에는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2001년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의 개도국지위 논란이 또다시 제기됐다. 당시 농업당국은 개도국지위 유지를 위한 논리 개발을 위해 다양한 측면을 검토했으나 성과를 보지 못했다. 향후 새로운 다자협상이 시작되면 개도국지위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올 수 밖에 없다.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미래' 농업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음을 강조한 것은 개도국지위에 기반하고 있는 현재의 농업분야 특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농업계와 국민들에게 명확하게 해두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새로운 협상에서 쌀과 같은 민감품목 보호를 위해 '유연성'(flexibility)을 협상할 권리를 전제로 개도국지위를 포기했다는 점도 강조되어야 한다. 앞으로 논리 개발과 국제적인 확산이 필요하겠지만, 정부가 언급한 유연성은 새로운 WTO 협상을 대비해 농업보호를 위한 새로운 방패막이를 고안하겠다는 것이다.
미래 다자농업협상으로 발생하는 농업피해를 보전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이란 다짐과 함께, 우리 농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부지원과 투자를 늘리고, 농업인 소득안정 및 경영안정을 적극 지원하며, 국산 농산물의 수요기반을 넓혀 농업개방 대응력을 확충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정부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농업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굴복한 것으로 비판하면서, 이번 결정으로 우리나라는 통상주권을 포기한 셈이고 농업이 낭떠러지로 내몰릴 것으로 국내 농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개도국 재분류는 WTO 무역체제의 과실만 따먹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에서 시작됐다. 대만, 브라질 등 미국의 의중을 간파한 몇몇 국가들은 포기 선언으로 실리를 취했다. 만약 우리나라가 버틴다면 중국의 방어논리는 한층 더 확고해지겠지만, 한미 관계는 여러 측면에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시한에 맞춰 포기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입 농산물과 경쟁해야 하는 농업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어차피 포기해야 할 사항이라면 실리를 따져 자동차 232조 관세 면제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도록 시점을 정해야 할 것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정부는 몇가지 농업지원책을 함께 발표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농업계와 정책당국이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및 선진화 계기를 마련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