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법 기술자들이 지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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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법 기술자들이 지배하는 사회

   
입력 2019-11-03 18:23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현재 대한민국은 법률가들이 이끌고 있다. 특히 대통령과 서울시장, 경기지사, 제1야당의 당 대표와 원내대표까지 모두 법조인 출신이다.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1980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이듬해 합격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1986년과 1992년 사시 합격자 이재명 경기지사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모두 이 시대 법조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법률가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정치는 전례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를 갈라놓았던 '조국사태'는 법에만 의존하는 사고의 위험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딸의 장학금 특혜, 논문저자 부당표기, 사모펀드 의혹 등 자신과 가족에게 쏟아진 의혹에 대해 불법적인 행위는 없었다고 강변해왔다. 국민들은 조 전 장관에게 법률 위반만이 아니라 도덕적 청렴성도 요구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문 대통령도 지난 9월 "위법성이 입증 안 됐는데 의혹만으로 사퇴시키면 나쁜 선례를 남긴다"면서 조국 전 장관을 옹호했다. 법조인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 단면이었다. 조국사태의 결론은 검찰과 법원의 몫이 되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최근 행보에서도 정치인이 아닌 법조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2년 전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박찬주 전 육군대장을 자유한국당 1차 영입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박 전 대장의 혐의들은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았거나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이는 갑질 행위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갑질행위를 법률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시도는 법으로 무죄라면 괜찮다는 황 대표의 시각을 보여준 셈이다.

지난달 31일 제정된 법무부 훈령에서는 아예 숨이 막힌다. 법무부는 오보를 낸 기자와 언론사에 대해 검찰청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훈령을 만들어 12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새 훈령에 따르면, 검찰청은 사건 관계인이나 검사, 수사업무 종사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침해하는 오보를 한 기자를 비롯한 언론종사자에게 검찰청 출입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검찰과 정부에 불리한 보도를 막겠다는 생각이 담겨져 있다.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판단도 법률가들이 결정하겠다는 의도다.



얼마전 박원순 서울시장도 라디오 방송에서 "언론의 자유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언론에게만 해당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징벌적 손해보상제도는 가해자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경우, 엄청난 보상액을 물도록 하는 제도다. 자칫 언론 보도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법안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한비자(韓非子)는 법률의 엄중한 이행을 강조한 사상가이다. 법가(法家)라고 불리는 한비자의 후예들은 사안을 옳고 그름의 양극단으로 놓고 판단하는데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합의에 의한 조정보다는 명확한 결론을 좋아한다. 지난 8월 정년퇴직한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는 "법률가는 옳고 그름을 가리고 피아(彼我)를 나누는 경향이 있다"며 "잘라 놓은 단면 속에서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합리(合理)보다는 한국 사회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화리(和理)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내 법조인은 대략 3만 2000명(변호사 2만 7000여명, 판사 2900여명, 검사 2000여명)이다. 이들 모두가 시시비비 가리길 좋아하거나 법률지상주의에 빠져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잘못이다. 하지만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모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합의에 의한 갈등 조정보다는 갈등을 증폭시키기에 익숙한 행태를 보인다. 나아가 갈등의 최종 해결을 법원에 판결을 맡기려는 경향도 보인다. 실제로 지난 4월 선거법 개정안을 포함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놓고 국회에서 일어났던 여야의 충돌은 고소·고발 끝에 검찰수사, 법원 판결로 결정될 예정이다. 합의 없는 극한 대립의 결론은 언제나 법원의 몫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은 법률 규정에만 얽매여서는 안된다. 자신의 법 지식을 활용해 특정 집단에만 도움이 되는 법률을 만들어서도 안된다. 법률규정에만 기초해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이는 법 기술자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법 기술자가 아니라 법 지식을 갖춘 정치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만약 법 기술자의 역할을 하려면 전면에서 정치를 하지 말고 다른 정치인들을 조력하는데 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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