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한국은 미국의 `ATM`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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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칼럼] 한국은 미국의 `ATM`이 아니다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19-11-12 18:20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논설위원
대통령 선거를 1년 정도 남겨놓고 있는 지금, 미국 정국의 최대 이슈는 '탄핵'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심상치않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민주당 주도의 하원 조사는 빠르게 진행중이다. 지난 10월 11일 우크라이나 게이트와 관련해 국무부와 백악관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불려나와 하원 청문회에서 증언했다. 거의 모두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내용들이었다. 게다가 하원은 주요 증인들의 비공개 청문회를 공개로 전환할 예정이다. 이제 미국인들은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를 통해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내심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온 1973년 '워터게이트 청문회'의 재연을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불리한 증언들이 하나 둘씩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탄핵 찬성 여론은 높아지는 추세다. 대표적인 친 트럼프 언론인 폭스뉴스의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탄핵 찬성이 반대를 넘을 정도다. 트럼프가 탄핵이 될 지 안될지는 두고봐야 겠지만 '탄핵의 망령'이 대통령의 '황금 같은'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넘쳐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자신을 옹호하려는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같은 국내의 정치적 위기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보다 더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듯 하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을 둘러싼 한미 협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게 총 50억 달러에 달하는 분담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 순환배치와 한미연합훈련에 드는 비용까지 포함한 금액이라 한다. 올해 방위금 분담액 1조389억원의 '5배' 규모이자 2020년 대한민국 전체 국방예산의 10분의 1 수준이다. 상식 선을 넘는 액수라 트럼프 식 '협상의 기술'로 본다면 일단 강하게 가격을 제시하면서 서서히 풀어주는 전략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동맹국에 보다 많은 방위비용을 부담시킨다는 것은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부터 누차 강조한 대목이다. 이는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인기 높은 정책이다. 따라서 재선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맨해튼식 부동산 거래'를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내년부터 적용될 한미 방위비 분담금(SMA) 협상이 현재 진행중이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오는 15~16일 열리는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참석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해 분담금 인상 등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미국은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차관보와 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분담협상 대표 등이 한국을 찾아 이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에스퍼 장관까지 한국을 찾음에 따라 미 국방·외교·안보 책임자들이 총출동하게 됐다. 한미 양국은 이달 중순 이후 서울에서 방위비 협상 회의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협상에서 한국은 일단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당당해야 한다. 분담금 증액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두려워하면 협상을 못한다. 그리고 미국의 요구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지의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두는 이유는 단순히 한국 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주한 미군은 어느 일방의 이익이 아니라 양국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다. 한국에 미군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에서 안보전략상 우위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으로서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한국내 미군기지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이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미국 측에 끈질기게 알리고 전략적으로 협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역제안 방안도 필요하다. 만약 불합리한 증액을 압박하고 '주한 미군 철수'로 위협하려 한다면 반대로 "차라리 주한 미군을 줄여달라. 그러면 미국의 재정적자도 줄어들 것이 아니냐"며 공수(攻守)를 일변시키는 논법으로 맞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도 말이 안통하면 버티기를 선택해야 한다. 합의를 거부하면 올해 분담금이 내년에도 자동으로 적용되게 된다.

한국은 미국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분담금의 대폭 증액을 강요하는 것은 과욕이다. 동맹국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앞뒤 맥락없이 펼쳐지는 미국의 독선적인 외교에 한국이 희생양이 되서는 안된다. 정부는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협상 결과물을 내놓아야한다. 눈치나 살피는 아마추어식 외교를 펴서는 길이 안보인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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