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차현정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투자업계에 상반된 두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개인 전문투자자 진입 문턱은 지금보다 대폭 완화하는 동시에 금융사에 대한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책임은 더 엄격하게 묻는 것을 골자로 한 방안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진입 장벽 완화로 금융소비자들이 이전보다 쉽게 전문투자자 자격을 갖게됨에 따라 자연스레 분쟁사고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리 감독책임을 증권사에 모두 떠 넘긴 채 모순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개인 전문투자자 요건 완화를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오는 21일 시행을 앞두고 당장 14일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이 먼저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르면 21일부터는 초저위험 상품을 제외한 잔액 5000만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개인 전문투자자 요건이 충족된다. 현행 개인 전문투자자가 되려면 금융투자상품 잔액이 5억원 이상이면서 금융투자 계좌를 1년 이상 보유해야 했다. 연 소득액이 1억원 이상이거나 자산이 10억원 이상이어야만 손실 감내 능력이 있는 것으로 봤지만, 앞으로는 부부 합산 소득이 1억5000만원이거나 주거 중인 자택을 제외한 재산 5억원으로 기준이 완화됐다.
이보다 먼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사모펀드 등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14일 내놓는다. 최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원금 손실 사태 등으로 투자자보호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관련 감독규정을 보다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투자자보호 강화와 전문투자자 요건 완화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 과연 바른 정책인지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개인 전문투자자에 한해 사모펀드 최소 투자금액 요건(1억원 이상)이나 장외파생상품 등 고위험 상품에 대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데, 소득 요건과 사전 교육을 다소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앞서 개인 전문투자자 기준을 완화하는 현재 정책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
업계는 무엇보다 투자자 요건 완화로 분쟁사고 개연성이 커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종전 금융투자협회가 하던 개인전문투자자 인정 주체가 각 증권사로 바뀌게 되는데 사후약방문 대책에 급급해 관리감독 책임을 전부 증권사들에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보호에만 집중하며 결국 이슈가 터지면 증권사에 책임을 모두 묻겠다는 구조"라며 "당장 개인 전문투자자 요건에 대해 증권사가 적정성을 따지고 누락된 내용을 발견하는 일 또한 어려운 일이고 소비자보호 강화로 과징금을 물지 않으려면 외부기관에 용역을 맡겨야 하는 등 절차만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토로했다.
반면 양립 가능한 문제라는 진단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더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전문투자자 범위에 포함되면서 사고 위험은 높아질 수 있으나 이는 투자자 보호규제 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며 "판매자에게 투자자 적합성 판단에 대한 의무를 더 무겁게 부과함으로써 판매사가 5000만원을 낼 수 있는 사람 중 위험투자가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 고객을 구별하도록 요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거래소의 상장규정 완화 문제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서 비교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거래소 상장문턱 완화로 위험한 기업 상장이 늘고 투자자 피해 우려도 커진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증권사들의 선별작업에 의해 잠재력 있는 기업만 받아주고 있듯 동일 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