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DT현장] 소는 누가 키우나](http://contents.dt.co.kr/images/201911/2019111402102269781001[1].jpg?var=0659 "[DT현장] 소는 누가 키우나")
요즘 '규제'라는 단어를 거의 매일 접한다. 아무래도 기업들을 주로 취재하다 보니 그런 면도 있겠지만, 일상 생활에서도 뭘 하지 말라는 가르침의 경고문이 도처에 깔려있다. 실제로 규제는 계속 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실이 공정거래위원회 하위법령의 규제·제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6년 사이 규제강화 법령은 81건에 이른 반면 규제완화는 32건에 불과했다.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특히 지난 8월부터 시행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시행령 개정안은 다소 지나친 면이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정부에 규제개혁을 요청할 때에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정치권이 협조를 안해준다'고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는데, 기업을 상대로 규제나 제재를 강화할 때는 국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하위 시행령 개정으로 신속하게 통과시키더라"고 한탄했다. 이러니 기업 경영자들의 불만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요즘 우리 경제는 버려지고 잊혀진 자식이 된 것 같습니다"며 쓴 소리를 한 이유도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비단 기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대로 일상생활에서도 온통 하지 말라는 것들 투성이다. 재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 그나마 가장 확실하게 규제를 풀어준 것이 시위, 집회의 자유 정도가 아닌가 싶다는 푸념도 나온다.
그 덕분에 광장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다양해졌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된다. "하지 말라"는 말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어차피 안 된다는 불만만 쌓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특히 전 세계에서 불어오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규제의 벽에 막히면 생각의 틀이 좁아진다.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지고 성장동력의 물줄기가 막히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과거 정부도 그렇고 현 정부도, 나열하지 않는 규제는 모두 허용한다는 '네거티브' 정책으로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기소한 '타다'의 사례를 보면서, 상당수의 벤처사업가들은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에 진정성이 있는지를 의심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 여야가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 신용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 개정안 등 일명 '빅데이터 3법' 처리에 합의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탄력근무제와 최저임금 개편, 벤처투자촉진법 등 기업들이 요구하는 여러 법안들인 여전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20대 국회 법안 처리율은 28.6%에 불과하고, 1만5000건 이상 법안이 계류 상태다.
이런 사이에 어느덧 총선 시즌이 도래했다. 선거철만 되면 정책 법안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연결'은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중이고,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도태되기 십상이다. 개인 뿐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선거에 발목 잡혀 '개점휴업'에 들어갈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이라도 적어도 기업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라도 상생협력을 노력하면, 정부도 규제개혁으로 경제와 사회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주길 바랄 뿐이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우리가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장수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정부는 기업이 착해지기를 바라기보다는, 돈을 벌겠다는 이기심을 잘 이용해 선순환을 이끌면 된다. 최소한의 물꼬를 터주기 바랄 뿐이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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