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고 '퇴직금'은 폐지하는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적정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퇴직연금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로자의 보루인 퇴직금이 노후대비 자산형성을 위해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에 투자될 수 있다'는 점과 '퇴직연금을 일시불로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홍보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퇴직연금 가입자는 전체 가입대상 근로자의 50.2% 수준(2017년)이다. 일시금이 아닌 연금수령 비중은 1.9%(2017년, 계좌수 기준)에 불과하다.
금융위는 현재 발의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퇴직급여법) 개정안'의 신속한 국회통과를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회사가 장부상 퇴직금을 유보할 경우 파산시 받을 수 없지만, 퇴직연금으로 금융사에 예치하면 회사 도산 여부와 상관없이 개인 퇴직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위의 퇴직연금 의무화 추진 발표 후,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또 퇴직연금에 대한 국민 이해도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일시금이 아닌 연금수령을 유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자체가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일각에선 강하게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니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는 게 아니냐'는 불신서부터, '이젠 퇴직금까지 정부가 손대네. 다른 건 다 공론화하면서 이런 건 왜 정부 마음대로 하느냐'는 불만 의견이 인터넷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퇴직연금 구조가 복잡한 탓도 있다.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의 퇴직연금 상품은 △확정급여(DB)형과 △확정기여(DC)형, △개인형퇴직연금(IRP) 등 3가지다. DB형은 은행의 운용 성과와 별개로 근로자가 퇴직할 때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퇴직연금이다. 반면 DC형은 근로자가 자신의 적립금을 직접 투자처에 분배해 퇴직연금을 불릴 수 있는 상품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이 '일시금'과 '연금' 중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라면서 "DB형은 운용성과에 대한 책임을 회사가 지지만, DC형은 원금손실에 대해 근로자가 책임진다"고 말했다.
정부는 유럽·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일시적으로 퇴직연금 운용 중 손실이 날 수 있지만, 안정적인 금융투자상품을 선택해 중장기적으로는 수익률이 나는 구조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미래 퇴직금을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에 반발해 이 제도 도입은 그동안 번번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DB형 퇴직연금 도입 기업에 퇴직연금 운용 목표수익률과 자산배분전략 등 적립금운용계획서(IPS)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은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에 대한 '디폴트 옵션 제도'다. 가입자가 일정기간 상품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미국·호주처럼 사전에 지정된 적격투자 상품에 자동 가입시키는 것이다. 이는 금융사가 공격형 상품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짜놨더라도 근로자가 모르는 채 가입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금융권은 수십 년 운용될 퇴직연금 잡기에 혈안이다. 그러나 정작 금융권이 운용한 퇴직연금의 최근 5년 수익률은 정기예금 금리보다 못한 1%대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2016년 1.58%, 2017년 1.88%, 2018년 1.01%였다.
반면 금융사의 퇴직연금 수수료율은 2016년 0.45%에서 2018년 0.47%로 올랐다. 한 퇴직연금 가입자는 "연금을 계속해 불입했는데, 수익은 늘지 않고 마이너스를 갈 때도 있는데, 금융사만 돈을 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심화영기자 dorothy@dt.co.kr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기관도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퇴직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사업자 범위를 확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