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광운대 경영대학 교수·기술경영경제학회장
![[기고] 중기벤처 지원 `성장성`이 능사인가](http://contents.dt.co.kr/images/201911/2019111802102369660001[1].jpg?var=4523 "[기고] 중기벤처 지원 `성장성`이 능사인가")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정부 R&D 예산이 늘어나면서 일각에서 그 효과성을 문제 삼고 있다. R&D 지원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좀비기업을 양산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부 R&D 지원을 받은 기업과 지원을 받지 않은 기업들 간 매출과 고용증가율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가 없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결과로 힘을 받고 있다. 일부 여당 의원조차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부 R&D 지원을 통해 창출한 중소기업 일자리가 많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중소기업 R&D 사업의 부실을 문제 삼았다.
이러한 비판에 대응해 박영선 장관이 이끄는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8월 중소기업 R&D 지원체계 혁신방안을 내놨는데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연 1억원 내외 자금을 지원하는 단기·소액 지원방식에서 벗어나 미국의 SBIR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지원기업의 혁신역량 발전에 따라 추가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4차 산업혁명 연관 기술 등 성장성이 높은 분야와 최근 문제가 대두된 소재·부품·장비 분야 등에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성공 가능성이 큰 중소·벤처기업을 선별하기 위해 벤처캐피탈 등 민간이 투자한 기업에 대한 R&D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중기부가 내놓은 혁신방안 대로 정부 R&D가 집행된다면, 정부 지원을 받은 중소기업들의 성과가 증가하고, 좀비기업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과연 중소기업 R&D 사업의 효과가 커질 수 있을까? 만약, 중소기업 R&D의 효과성에 대한 일각의 비판이 그릇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에 대응한 중기부의 혁신방안은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R&D 지원은 시장실패로 인해 기업들의 R&D 투자가 적정 수준보다 낮아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실패 위험이 높거나 기대이익이 낮아서 민간이 투자를 꺼리는 기술, 신제품 또는 창업 아이템에 대해, 기술의 축적과 확산을 통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민간 대신 정부가 투자하는 것이다.
따라서 R&D 지원의 효과성은 지원받은 기업이 직접 산출한 성과뿐만 아니라, 사업화에 실패한 기술이나 인력이 타 분야에서 활용됨으로 인해 창출되는 성과까지도 포함하여 계산돼야 한다.
정부 중소기업 R&D 지원사업의 효과를 직접 지원 효과뿐만 아니라 파급 효과까지 고려할 경우, 지원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중기부의 혁신방안과 같이 성장성이 높은 유망 기술과 기업을 선별해 지원하는 것은 직접지원 효과는 커지겠지만 파급효과는 낮을 수 있다. 특히, 이런 선택과 집중에 의한 지원은 민간의 R&D 투자를 보완하고 견인하기보다 구축(crowding out)하는 효과가 크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혁신안 중 R&D 지원 대상 선정 시 민간이 이미 투자한 기업에 후속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도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혼동해 잘못 선정한 것이다.
역동적인 중소·벤처기업 혁신생태계가 만들어지려면 민간 투자가 없는 기술과 기업에 정부가 선도적으로 지원하고, 그 중 성공한 기업들이 민간 후속 투자를 유치하도록 해야 한다. 최근 유럽 정책기관이나 학자들은 중소기업 R&D 선정평가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다. 유망기업을 선별하기보다는 창업 초기 기업이나 지방 중소기업 등 정부의 지원 필요성이 인정되는 기업을 무작위 선별해 지원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을 따르자면, 선택과 집중은 바람직한 R&D 지원 혁신방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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