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인호 칼럼] 차라리 무능함이 더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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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호 칼럼] 차라리 무능함이 더 낫겠다

우인호 기자   buchner@
입력 2019-11-19 18:23

우인호 디지털전략부장


우인호 디지털전략부장
"정부가 나라를 거덜내고 있어요!"라고 소리치고 싶다. 총선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원래 '거덜내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양치기 소년은 되고 싶지 않으니 하나씩 따져볼까 싶다.


코 앞에 닥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이 먼저 눈에 띈다. 청와대가 지난 8월 지소미아 종료 방침을 말할 때 겉으론 일본을 향한 '죽창가'를 부르며 국민을 선동해 지지율을 올리려 했고 속으론 미국을 통한 일본 압박을 원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지나가는 일본 총리를 붙잡았던 '부끄러운 기억'은 일단 잊자. 3개월이 지났지만 일본은 변화 없고, 미국은 여전히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지금 철회하면? 총선은 망한다. 청와대는 '일단 종료하고 추후 일본이 변한 듯 보일 수 있게 선전한 후 다시 맺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그간 가만 있을까? 자기중심적 세계관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한 중세 신학자들 못지 않다. 이게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거덜낼 지는 가늠조차 안 된다.

12월 2일 법정처리 시한이 다가오는 2020 예산안은 '곳간 거덜내기'의 진수다. 513조5000억원의 2020 예산안은 한마디로 '퍼주기'다. 밑 빠진 독에 돈을 쑤셔 박는 임기응변식 대응밖에는 안 보인다. 181조6000억원의 복지예산은 전체 예산안의 1/3이 넘는다. 사상 최고치다. 전년과 비교해 복지예산을 20조6000억원 늘려 편성했는데 전체 증가분 43조90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한다.

국민들에게 뒷돈 주는 듯한 현금 복지가 치솟는다. 이번 예산안만 52조원 규모다. '국회예산결산특위 2020년도 예산안 종합 검토보고서'를 보니 올해와 내년 2년 간 정부의 현금 지원 사업 규모가 본예산으로만 10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문장이 나와 있다. '실패한' 소득주도성장을 지켜내기 위한 예산이 포함된 일자리 사업 예산도 2019년 예산보다 21.3% 늘어난 25조7697억원으로 편성됐다. 청와대는 이 예산안에 '함께 잘 사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덧칠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영혼은 없지만 기개는 있었던'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무너짐이다. 정부 각 부처가 당초 요구한 예산은 500조원 밑인 498조원이었다. 이를 기재부가 올렸다. 우리가 언제 국회를 믿었나. 야당 의원들이 예산안을 반드시 깎겠다고 벼른다지만 연말연시에 우리는 늘 그들의 '쪽지'를 봐오지 않았나. 그리고 내년 그들의 의정보고서엔 '내가 우리 동네를 위해 500억원을 유치했다'는 식의 자랑이 찍혀 나올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간 기재부 관료들이 청와대와 여당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 곳간을 지켜온 것을 높이 산 것인데, 이마저도 무너진 상태다. 게다가 내년엔 60조원 규모의 적자 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늘어난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적자 국채만 놓고 보면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2000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미래를 당겨서 현재 무너짐을 막는 구조다.

최근 발표되는 정부 정책 또한 나라 거덜내는 것들뿐이다. 지난 9월부터 순차적으로 발표되었던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향 4대 정책'이 대표적이다. 급격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는 우리 사회의 현안이고 이에 대한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고령자 계속 고용 △주택연금 활성화 △노인복지정책의 지속가능성 제고 등 돈 퍼부어 해결하겠다는 식 말고는 없다. '종합적·근원적 대책'이라는 정부 발표가 무색하다. 힘이 막강했던 정권 초에도 국민연금 개혁에 손도 못 댄 것을 보면 근원적 대책은 이미 물 건너 간 셈이다. 미래 세대에 빚만 잔뜩 넘기는 꼴이다.

혹시나 한 번 던져보지만, 설마 '나라를 거덜내는 것이 우리에겐 더 유리하다'는 속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겠지? 간절히 바란다. 음흉함보다는 원래 '거덜내는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함이 더 낫다. 회복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시간 되면 바꾸면 되니깐. 차라리 내가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게 더 낫다.

우인호 디지털전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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