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오후 7시 30분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
11월 24일 오후 3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드뷔시 피아노 3중주·라벨 피아노 3중주·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
월간 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첼리스트 양성원
애도(哀悼).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 그 죽음의 대상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이나 국가로 확대됐을 때, 우리는 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때의 아픔을 되살리고, 경험에서부터 비롯한 교훈을 얻는 것이 도움이 될까.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격렬하게 분열되어 '죽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를 되살리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첼리스트 양성원은 그렇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덧붙인다. 역사를 문자로 기록한 콘텐츠보다 더욱 확실하게 사람의 마음에 침투할 수 있는 것은 개인과 민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당대 음악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음악의 배경이 된 역사적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로 결성 10주년을 맞는 트리오 오원은 차이콥스키·쇼스타코비치·바인베르크의 피아노 3중주를 담은 '러시안 엘레지'를 발매했다. 트리오 오원은 2009년 첼리스트 양성원을 주축으로 피아니스트 에마뉘엘 스트로세와 바이올리니스트 올리비에 샤를리에 등 파리 음악원 출신의 음악가들로 구성됐다. 그동안 드보르자크 '둠키'(2010)를 시작으로, 슈베르트·드보르자크 피아노 3중주(2011),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2015),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2016)를 선보여 왔다. 이번 앨범에서는 특별히 음악이 표현한 시대의 비극을 인문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도록 옥스퍼드대 러시아 문학과 음악교수이자 인문학연구센터장인 필립 블록과의 대담을 담은 DVD를 함께 실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모습으로 이번 앨범을 기획한 첼리스트 양성원을 만났다. 죽은 음악가를 되살리기 위해선 살아있는 연주자가 죽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다.
결성 10주년을 맞아 러시아 작곡가들로만 레퍼토리를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는 트리오 오원이 차이콥스키를 연주해야 할 때라는 생각과 동시에 차이콥스키와 매칭할 수 있는 곡들을 찾았는데,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바인베르크를 발견했다. 그는 굉장한 작곡가인 동시에 저평가된 대표적인 작곡가다. 특히 바인베르크의 곡은 한 작곡가의 개인적인 작품이라기보다 한 시대의 삶을 기록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그는 홀로코스트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었다. 본인은 가까스로 러시아에 정착해서 쇼스타코비치를 만나게 되지만, 당대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끔찍한 운명에서 자신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이러한 감정을 담아낸 콘텐츠에는 영화·소설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나, 음악이야말로 당시의 혼이 담겨 있는 아카이브라고 생각한다. 단어로는 차마 풀어내지 못했던 감정들을 음악으로 표현해냄으로써 동시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 사람에게도 과거의 일을 재생하도록 하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바인베르크 외에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무엇을 애도했는지도 궁금하다. 1881년 차이콥스키는 피아노 3중주를 작곡하여 사랑하는 친구이자 동료였던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의 죽음을 기렸다. 그의 음악은 오늘날 러시아 음악이 유럽 전체의 실내악 전통에까지 큰 영향력을 미치는 데 기여했다. 이후 피아노 3중주를 작곡한 차이콥스키를 답습하는 후대 작곡가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애도하는 대상은 개인을 넘어선 나라로 확장된다. 쇼스타코비치는 1936년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사설이 실린 이후, 언어가 없이도 강렬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기악음악에 주력했다. 1943년 완성한 피아노 3중주 2번 마지막 악장에는 유대인 전통 음악인 클레즈머를 인용함으로써 전인류적인 비극에 애도를 표했다.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방에서 수도 없는 젊은 러시아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하는 음악이라는 것을 알고서 이 곡을 들을 때,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오직 음표들로만 표현하는 고통, 그것은 더 깊이 있고 진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음악을 둘러싼 배경지식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반면, 해설 없이 오롯이 음악만을 즐겨야 한다는 입장 또한 존재하는데.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이 강해서 굳이 알지 않아도 들려오는 음악이라면 배경지식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이번 앨범의 곡들처럼 역사의 흔적을 기록한 음악은 인문학의 가장 큰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어떠한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이 음악들을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이렇듯 인류의 혼이 담긴 기록을 온전히 재생하는 것이 우리 같은 음악가들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사명감을 느낀다. 이를 위해선 연주자 자신이 담긴 음악을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실내악을 알게 되기까지
트리오 오원은 조선 시대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의 예술혼을 기리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특별히 장승업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나? 존경하는 브람스와 동시대를 살다간 인물이기도 하고, 특별히 많은 곳을 여행했던 아티스트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디테일이 살아 있는 화법에 감탄했다. 그의 그림 속 동물들의 움직임은 꿈틀거림을 느낄 만한 디테일을 가진다. 예술 외 다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았던 점 역시 매력적이었다. 2002년 장승업의 생애를 다룬 영화 '취화선'이 프랑스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바 있어서, 트리오를 구성하는 다른 아티스트들 역시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실내악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트리오 오원뿐 아니라 엔리코 파체 등 오랜 시간 함께해온 음악적 파트너들도 많다. 음악적인 파트너를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나와 같은 음악적 색깔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면 한 방향으로밖에 가지 못한다. 따라서 나의 음악적 색깔을 보충해줄 수 있는 다른 색깔을 지닌 연주자를 찾으려고 한다. 특히 트리오라는 것은 삼각대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연주만으로는 완벽한 음악을 추구할 수 없다. 트리오 오원은 서로 보충해주고 기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화려함보다는 깊게 내려앉음을 추구하면서 말이다. 음악 외적인 기준으로는 음악 앞에서의 겸손함이 가장 중요하다. 음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음악 외적인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삶의 태도 또한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진지함과 겸손함을 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끊임없이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끝으로 실내악의 매력을 알려 달라. 누군가를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람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과 성격 등 모든 것을 알아야 해서다. 서양음악이 한국에 들어온 것이 60년 정도 됐고, 그동안 정말 많은 성장을 했다. 그러나 아직 대중이 클래식 음악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침내 음악의 내면을 깊이 깨닫게 된다면, 실내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실내악은 모든 음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글=권하영기자/사진=P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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